[치매·중풍] 영어단어 외우고, 주말농장서 일하고 … 끊임없는 뇌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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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기순(59·서울 성북동)씨는 올 3월부터 대학에 편입해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책꽂이에서 자녀의 전공 서적을 꺼내 읽고, 영어단어나 사자성어를 외우기도 한다. 오메가 3 보조제도 꾸준히 먹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틈틈이 전자게임도 하고 있다. 김씨가 이렇게 ‘유별난’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뇌를 좋게 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운동을 하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급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뇌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혹시 치매나 중풍이 오면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뇌에 좋다는 것은 모두 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에는 치매보험에도 가입했다.

김씨는 “예전에 가끔 깜빡깜빡 잊을 때마다 불안했다”며“요즘 새벽까지 어려운 책을 읽고 나면 뇌가 젊어지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주부 유영희(58)씨는 “아무개 전화번호가 몇 번이냐”고 누가 물으면 바로 입에서 숫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몇 년 전부터 숫자가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하고 기억나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유씨는 2년 전부터 매일 19단을 외우고 있다. 증권사에서 여는 주식투자 세미나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네 살배기 손자와 퍼즐이나 블록 놀이도 함께한다. 손자에게 영어동요를 불러 주거나 영어동화를 읽어 주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주말농장에서 유기농 채소도 가꾼다. 아침 식탁에는 견과류를 갈아 넣은 미숫가루와 올리브유를 뿌린 샐러드를 올린다. 식물성 기름과 비타민이 뇌를 건강하게 한다는 생각에서다. 유씨는 “(치매 등으로) 나 자신을 잊어버리면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아 두렵다”며 “뇌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매나 중풍에 걸리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가 하면 뇌에 좋다는 보조제나 음식을 먹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미리 관리하면 치매 발병률을 7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은아 서울시립 서북병원 신경과장은 “치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서 관리하는 것은 어렵다”며 “사후 대책보다는 사전 예방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활동 유도해 발병 막아”=“아유~ 시원해서 좋아. 발이 따뜻해지면 머리까지 맑아진다니까.”지난달 중순 도쿄 혼마치 마을의 미나미 이쿠코(83·사진右) 할머니는 욕실에서 방문 헬퍼(helper:일본 개호보험에 따른 서비스 종사자)에게 뜨거운 물로 발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 셋은 지방에 있어 혼자 산다.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당뇨로 쓰러져 3개월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지만 몸을 잘 움직이지 못했다. 개호보험으로 헬퍼 서비스를 받으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미나미 할머니는 하루를 꽉 짜인 일정에 따라 활동한다. 수요일을 제외한 월~금요일, 오전 6시에 기상해 준비를 마친 뒤 오전 9시30분에서 오후 4시30분까지 주간보호시설(낮에 시설에서 보내는 것)에서 시간을 보낸다. 남는 시간에는 이웃 주민들과 함께 산책이나 쇼핑 외출을 한다. 미나미 할머니가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은 치매나 중풍을 막기 위해서다.

도우미 고오게쓰 에비코는 “예방 차원에서 청소도 다 해주면 안 된다”며 “앉아서 청소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목욕 서비스도 직접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 안 걸렸는데도 요양원 입소”=베르너 도어만(80) 할아버지는 4년 전 독일 에센 외곽에 있는 노인시설 ‘성 루드게리’에 들어갔다. 치매나 중풍 증상은 없지만 집안에서 자꾸 넘어지자 혼자 사는 것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도어만 할아버지는 방을 같이 쓰는 오토 슈레테(93·사진<右>)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매일 산책한다. 심장이 약한 슈레테 할아버지는 걸음이 빨라지면 숨이 차다. 도어만 할아버지는 다리에 무리가 오지만 두 노인은 하루 한 시간씩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도어만 할아버지는 매일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을 듣고 신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감성과 기억력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곳에는 치매나 중풍으로 도움이 필요한 노인 150명이 살고 있다. 요리나 청소 등은 시설에서 서비스를 받고 낮에는 춤·노래·그림 등의 다양한 그룹 활동에 참가한다.

도어만 할아버지는 “이곳에 온 뒤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며 “입주자 대표를 맡아 노인의 의견을 듣고 시설에 전달하면서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활동해야”=가톨릭대 성가병원 심용수(신경과)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혈압이나 당뇨, 비만, 콜레스테롤 등 치매 위험인자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술을 줄이고 담배는 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며 “수동적으로 앉아 TV 드라마를 보기보다는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건망증과 달리 기억상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이때는 의사 처방에 따라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물이나 오메가3 같은 보조제를 섭취하는 것이 방법이다. 체질량지수(BMI)가 급감하거나 일상적으로 맡던 냄새를 못 맡을 때도 병원에 가야 한다. 55, 60세 등 일정한 나이가 넘으면 정기적인 건강검진도 필수적이다.

스웨덴 왕립치매연구소 실비아홈 대표 뷜헬미나 호프만 박사는 “치매는 현재로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지만 오메가 3를 꾸준히 섭취하고 정상 혈압을 유지하면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민상·이진주 기자,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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