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닮은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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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2년 발표된 영화 『실종』은 73년 칠레가 무대다.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사라진 한 미국인 젊은이를 찾아 나선 아버지와 아들의 연인 얘기다.이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크게 호평받았다.이 영화를 감독한 콘스 탄틴 코스타가브라스는 권력이 평범한 시민에게 가한 무자비한 횡포를 폭로한다.그는 이에 앞서 『Z』『고백』등 정치영화들을 발표,주목을 끌었다. 73년 9월11일 칠레 군부는 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을 무너뜨렸다.아옌데정권은 중남미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좌익정권이었다.아옌데는 사회주의 개혁을 실시하고 국가기간산업을 국유화했다.주로 미국 자본이 소유하고 있던 동광(銅鑛)들도 그 대상이었다.이에 반발한 미국 자본과 국내 자본가들의 사주(使嗾)를 받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성공후 군사평의회가 구성돼 의장에 육군사령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취임했다.피노체트는 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대대적 숙청을 벌였다.13만명이 체포돼 3만명이 처형 또는행방불명됐다.대통령직을 겸한 피노체트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재도입하고 과감한 성장정책을 추진,경제는 급속히 발전했다.그러나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철권통치로 전세계로부터 비난받았다.81년 새 헌법을 채택한 군사정부는 국민 회유책의 하나로88년 군부가 세운 대통령후보의 지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약속했다.투표 결과 전체 국민의 53%가 피노체트를 거부,90년 3월 민정복귀가 이뤄졌다.그러나 피노체트는 그대로 물러나지않았다. 민정 이양에 앞서 헌법을 개정,「정치제도의 영속성이 위협받을 경우」 언제든 군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피노체트 자신은 98년까지 육군사령관직을 유지하고,그 후에도후임자를 추천할 권리를 갖고 있다.피노체트는 지난달 2 5일 80회 생일파티에서 73년 쿠데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역사가되풀이된다 해도 똑같이 행동하겠다고 호언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구속된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을 「한국의 피노체트」라 부르면서 저돌성.부패.야만적 통치 등에서두사람은 닮은꼴이라고 보도했다.가능하다면 두사람의 소감(所感)을 한번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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