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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지키고 회사 살리려는 고육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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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29면

충남 천안의 쓰리쎄븐 공장. 한 달 새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차분한 분위기다.

“상속세가 큰 부담이 된 것은 맞다. 그러나 세금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애써 키운 기업을 매각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하지 말아 달라. 우리는 법에 정해진 상속세도 내고, 회사도 지켜낼 것이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 쓰리쎄븐이 팔린 까닭은

세계 1위 손톱깍이 업체 쓰리쎄븐의 김상묵(48) 사장은 지난달 30일 중외홀딩스에 회사 경영권을 넘긴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고(故) 김형규 창업자의 맏사위로 2003년 말부터 경영을 책임져 온 김 사장은 “나는 내년에도, 10년 뒤에도 회사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쓰리쎄븐 사례가 상속세 폐지 내지 완화 논리에 아전인수식 사례로 인용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쓰리쎄븐은 손톱깎이 하나로 전 세계를 호령하는 업체. 매출은 230억원대에 불과하지만 세계 80여 개 나라를 상대로 연간 6000여만 개의 손톱깎이를 공급한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32%(회사 추정)에 이른다.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낸 데 대해 회사 측은 “신약 개발 자회사인 크레아젠의 지분평가손 때문이며, 원자재 값 상승과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 속에서도 손톱깎이 사업은 선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레아젠은 2005년 쓰리쎄븐이 137억원을 들여 인수한 바이오 기업이다. 최근 세계 최초로 신장암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배용수 크레아젠 대표는 “시장성이 큰 전립선암 치료제, 관절염 치료제 후보물질도 보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제약업체 중외홀딩스는 크레아젠의 장래성을 보고 쓰리쎄븐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너무 시끄러운 시장

쓰리쎄븐 인수합병(M&A)이 이슈가 된 것은 과중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회사를 매각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실제 올 1월 창업자 김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유가족은 70억원대의 상속세를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특히 김 회장이 2006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크레아젠 임직원에게 보상 차원에서 260만여 주를 증여한 데 따른 세금까지 부담해야 해 세액이 불어났다. 현행 상속세법은 증여자가 5년 이내 사망할 경우 증여를 상속으로 간주해 여기서 발생하는 세금을 모두 상속인이 내도록 돼 있다.

결국 유가족은 4월 중순 가족회의를 열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주식을 팔기로 합의했다. 김 사장과 고 김 회장의 장남인 김진규(36) 쓰리쎄븐 상무 등 대주주 5명은 보유 주식 240여만 주 중 200만 주(18.5%)를 중외홀딩스에 181억원에 넘겼다.

이 계약 내용이 알려지면서 중소기업의 상속세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에 상속세 폐지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건의한 터라 파장이 컸다. 중소기업연구원 신상철 연구위원은 “상속세율을 낮추는 것은 물론 고용 창출이나 성장과 연계한 세금 감면 등이 가능하도록 해 가업을 잇는 사례가 정착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김상묵 사장은 “쓰리쎄븐이 상속세 문제로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설령 불합리한 법이라 해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 (회사 매각이) 정당하게 세금도 내면서 회사도 살리는 방법이었다”고 전해 왔다.

쓰리쎄븐은 지분 매각과 관련, 이중계약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초 4월 말 나무인쿠르딩·테드인베스트먼트·권승식씨 등 3자에게 200만 주를 160억원에 팔기로 했다가 한 달 만에 이를 파기하고 중외홀딩스와 계약을 한 탓이다. 이에 대해 이규형 쓰리쎄븐 기획실장은 “중외홀딩스로 매각 대상을 변경한 것은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가 분명해 소액주주와 크레아젠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며 “위약에 대해선 계약서에 명시된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조용한 회사

기자가 충남 천안 마정지방산업단지에 있는 쓰리쎄븐 본사를 찾은 것은 5일. 바깥에서 벌어지는 상속세 논쟁, 이중계약 논란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동요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점심 시간이 되자 100여 명의 직원은 공장 텃밭에서 상추를 따다 식사를 했다. 이튿날엔 인근 회사와 축구시합을 한단다. 원가 계산 마무리 작업이 남은 황규빈 영업부장 등 2~3명을 뺀 나머지 직원들은 5시40분 정시 퇴근했다. 어느 누구도 회사 매각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전날 직원조회에서 김 사장이 “걱정하지 마라. 회사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란다. 20년 넘게 일했다는 이 회사 김모씨의 말에서도 회사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식이 뭔지 잘 모른다. 사장님은 일이 많을 때면 우리와 같이 야근을 하는 분이다. 회장님 때부터 30년 넘게 이어온 전통이다. 그런 분들이 설마 거짓말을 하겠나.”

쓰리쎄븐은 25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8월 1일자로 회사 이름을 ‘크레아젠홀딩스’로 바꾸고 손톱깎이 회사(쓰리쎄븐)와 크레아젠을 자회사로 둔다는 계획이다. 이규형 실장은 “분할 계획서에는 손톱깎이 법인의 경영을 김상묵 사장과 김진규 상무가 맡는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 주인인 중외홀딩스 측은 “신임 등기이사들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거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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