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쇠고기 민심’… 한나라 영남서도 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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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권영세 사무총장이 4일 밤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재·보선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사진左>. [뉴시스]
4일 밤 통합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右>가 서울 강동구청장에 당선된 이해식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사진右>. [뉴시스]

역시 민심은 매서웠다.

6·4 재·보선의 투표함이 열린 뒤 한나라당에선 탄식이 흘렀다. 기초단체장 후보를 낸 6곳 중 경북 청도군 한 곳(이중근)에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광역 의원이나 기초 의원 개표 결과는 더 좋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불패 신화는 허무하게 깨졌다.

반면 통합민주당엔 웃음이 흘렀다. 서울 강동구청장으로 출마한 이해식 후보가 한나라당 박명현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서는 등 수도권에서 압승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년 전 지방선거 때 서울 25개 전 지역구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었다.

◇한나라당 수도권 참패=불과 두 달 전인 4·9 총선 때 수도권은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일색이었다. 전체 111석 중 81석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6·4 재·보선의 결과는 천양지차다. 수도권 지역의 기초단체장 세 곳에서 전패했다. 광역의원 선거도 11곳 가운데 단 두 곳에서만 이겼을 뿐이다. 기초의원도 5곳 모두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의석을 넘겨줬다.

당의 근거지로 꼽는 영남에서도 고전했다. 경남 남해·거창 군수 선거는 물론 광역 또는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 후보에게 뒤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 이후 어찌해 볼 도리 없이 지지도가 빠졌다”며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말했다. 김정권 공보부대표는 “이번 회초리를 보약 삼아 원기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나라당 당사는 결과를 어느 정도 예견한 때문인지 오히려 조용했다. 강재섭 대표는 아예 당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민주당은 고무된 분위기다. 손학규 대표는 오후 10시쯤 당사 6층 상황실에 들러 당직자들과 함께 개표 현황을 지켜봤다. 수도권에서 승리가 확실시되자 “지지를 보내주신 지역주민들께 감사드린다.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 제대로 야당을 하라는 채찍이고 격려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방송 속보를 보며 일부 당직자가 박수를 치자 “박수는 치지 말자”고 만류하기도 했다.

◇여권 내 쇄신 요구 커질 듯=과거 재·보선은 정국의 변수가 되곤 했다. 민심의 향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의 전신)이 2005년 이래 네 차례 치러진 재·보선에서 40대 0으로 전패하면서 사실상 ‘식물 정당’이 된 일도 있다.

이번엔 가뜩이나 정국이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여권은 국정쇄신책의 수위를 놓고 고심 중이고, 야권은 18대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장외로 돌고 있다. 6·4 재·보선 민심은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손을 들어줬다.

당장 민주당은 공세 수위를 높일 태세다. 김충조 최고위원은 “그간 이명박 정부의 실책에 쌓여 왔던 분노가 쇠고기 문제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며 “촛불집회가 국민이 한나라당에 보낸 1차 경고라면 이번의 패배는 제2의 경고 ”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으로선 민심 수습책을 놓고 더 고심해야 할 처지가 됐다. 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철저한 수습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인적 쇄신에 소극적인 청와대에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인적 쇄신 수위를 놓고 당과 청와대가 갈등할 개연성도 커졌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란 여권의 안이한 대응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며 “민심이 변한 걸 확인한 이상 느슨한 국정쇄신책으론 사태를 무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의 첫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입을 다물었다. 이동관 대변인은 일절 언급을 자제했다. 기초단체장 등을 뽑는 재·보선에까지 논평을 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내심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준엄한 민심의 결과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선 공기업 등 각종 개혁과제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고정애·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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