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스로‘30개월 이상’안 팔도록 요청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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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문제의 핵심은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나온 고기의 수입 여부다. 정부는 추가적인 협의를 통해 적어도 내년 4월 말까지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내년 4월은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이다. 쇠고기 포장에 연령을 표기해 소비자들이 몇 개월 된 소에서 나온 쇠고기인지를 알고 먹을 수 있게 하자는 협의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4월 18일 맺은 쇠고기 협정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식의 ‘전면 재협상’은 어렵다. 협정을 고치려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근거를 우리가 제시해야 하는데,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뛰어넘는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도 “재협상은 필요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출 자율규제’ 방식으로 문제를 풀 작정이다. 미국 정부와 업계가 알아서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이 방식은 통상 한시적으로만 적용된다. 미국은 1981년 일본과 협정을 맺어 일본산 자동차 수입물량을 제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협정 형태의 자율 규제는 특정 국가에 대한 특별 대우를 명문화하는 것이어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된다.

따라서 정부는 말 그대로 ‘자율 규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규제할지가 미지수인 것이다. 한국 요구를 들어주면 일본·대만과 진행 중인 쇠고기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도 미국으로선 부담이다.

전면 재협상을 주장하는 측은 정부 발표에 시큰둥하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한시적으로 수입이 제한된다면 연기되는 것이지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며 “‘2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하라’는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최종적으로는 미국이 구두로 쇠고기에 연령 표기를 한다는 약속을 하는 정도로 협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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