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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실버] “우리 회사 실질 정년은 80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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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남이섬에서 화훼조경 일을 하는 곽철건(65)씨였다. 곽씨는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하고 2005년 공채로 입사한 4년차 사원이다.

“정년퇴직한 뒤 한 2년쯤 방황하다가 이 회사에서 사원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어요. 연령 제한도 성별, 학력 기타 아무런 제한 규정이 없어 뭐 이런 회사가 있나 싶었어요. 아무튼 채용 분야가 ‘화훼조경’이라 내 취미와 딱 맞다 싶어 응시했습니다.” 곽씨는 정년퇴직을 한 자신을 사원으로 채용한 남이섬이 고맙다. 월급은 그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제2의 인생을 사는 처지에 연봉 같은 데 신경 안 씁니다. 오히려 난 젊은 사람들한테 미안하지요. 일자리 뺏은 것 같아서.”

곽씨는 오전 6시에 일을 시작한다. 여섯 군데 모닥불 피우고, 놀이객이 쓰러뜨린 꽃나무 손보고, 조경수 일일이 점검하는 게 그의 일이다. 섬 안 호텔들의 방을 돌며 장식품도 점검한다. 곽씨는 “카트 타고 섬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은 젊은이들에겐 맞지 않을뿐더러 짜증나는 일일 겁니다.”

40대 이상에서는 경기도 가평 남이섬을 ‘어수선한 유원지’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1990년대 말에는 도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지금은 변신을 거듭, 일본·대만 등 외국 관광객까지 찾는 명소가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덕도 있지만 독특한 경영도 큰 역할을 했다. 그중 하나가 고령자 채용이다. 남이섬은 실질적인 정년을 80세로 하고 있다. 강우현(55) (주)남이섬 사장은 “사실상 정년이 없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라며 “55세가 회사 규정상 정년이지만 그 나이가 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하는 직원을 그만두게 하지 않는다는 게 경영 방침으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경영 방침은 남이섬의 경영에 이미 녹아들었다. 직원 120명의 42%가 55세 이상이다. 정년을 맞아도 재고용되는 비율이 80% 이상이다.

쓰레기 분리 수거를 포함한 환경 관리를 담당하는 유제근(70)씨는 “이 회사에서 30년 동안 일하며 딸 넷, 아들 하나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다. 막내이자 아들인 자식놈은 한의대를 나와 지금 큰 한방병원에 근무하고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매일 나룻배로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6시 이후 퇴근하는 그는 “내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회사에선 80세까지라도 할 수만 있다면 일을 하라고 한다”며 웃음 지었다.

글=한규남 객원기자(kyunam19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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