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민주화시위 성공 사례-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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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의 붕괴과정은 「피플 파워」의 대명사다.20년간 장기 독재정치를 한 마르코스는 86년2월 부정선거로 네번째 권좌에 오르려 했다.억울하게 선거에서 패한 코라손 아키노는 시민의 힘을 업고 마르코스에 대해 비폭력 항전을 시작했다. 선거 보름째인 22일 군부가 마르코스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사태는 급박해졌다.엔릴레 국방장관과 라모스 참모총장서리는 『마르코스를 반대하고 아키노를 지지한다』며 국방부를 점거했다.
수만명의 군중들이 국방부에 몰려들었다.
정부군은 탱크를 들이댔다.하이메 신 추기경의 호소로 시민들은육탄으로 탱크에 맞섰다.마르코스의 정부군과 반정부군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연일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코리」(코라손의 애칭)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정부군은 시민들의 「인간의 벽」 앞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도 코라손을 지지하며 마르코스의 퇴진을 요구했다.시위는 계속됐다.많은 정부군이 이탈해 속속 반정부군에 가담했다.반정부군은 25일 TV방송국을 점령,대세를 장악했다. 마르코스는 완강했다.마르코스는 25일 급기야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고,코라손도 같은 날 반정부군과 시민들의 환영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한 나라에 두 대통령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시민들과 반정부군은 말라카냥궁을 향해 밀려갔다.마르코스는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취임 9시간만인 25일 오후10시쯤 마르코스는 미군 헬기로 대통령궁을 탈출해 클라크 미 공군기지를 거쳐 괌으로 달아났다.마르코스는 89년5월 망명지 하와이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방글라데시 지난 90년 12월6일 밤 방글라데시 다카시에 모인 수만명의 국민들은 군부독재 붕괴의 환희에 젖어 있었다.82년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후사인 모하마드 에르샤드 대통령이한달간에 걸친 민주화시위에 굴복,퇴진을 선언한 것이다.
정부측의 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50여명이 숨지는 극한상황에서도 국민의 힘은 군부독재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다.에르샤드가 전임군부지도자들과 달리 민주조치를 취했음에도 국민들이 그의 퇴진요구 시위를 계속 벌인 것은 쿠데타-반정쿠데타의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72년 독립이래 10차례에 걸친 군부쿠데타에 의한 부패.인권유린에 국민들은 질력이 나 있었다.국민들의 요구는 에르샤드 퇴진에 그치지 않았다.단죄도 요구했다.결국 에르샤드는 밀수.족벌주의.국가기금 횡령혐의로 퇴진 8일만에 재판에 회 부됐고,베굼할레다 지아(여)총리의 민선정부가 91년 3월 출범했다.국민의힘이 쿠데타 천국의 오명을 씻고,민주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파키스탄 파키스탄의 군부독재 청산에도 국민의 힘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군사쿠데타로 11년간 집권해온 지아 울 하크 대통령이 88년 8월 헬기사고로 숨지면서 파키스탄의 군부독재는 종막을 고하지만 이는 하크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몬 국민들의 민 주화시위 결과였다.
국민들은 이후 「차도르속의 여걸」 베나지르 부토여사를 총리로선출함으로써 군정의 묵은 때 벗기기에 나섰다.부토여사는 한때 이스하크 칸대통령에 의해 해임됐지만 국민들의 지지로 93년 총리에 복귀했다.
오영환,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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