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80. 순수 이탈리아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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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워커힐 디너쇼에 참석한 시부모님과 함께 한 필자.

내 열렬한 팬이었던 아르만도 게디니는 사업 차 자주 한국을 드나들며 내가 활동하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보았다. 자연히 내가 이혼을 했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심지어 내가 공연 도중 졸도할 때도 객석에서 나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우연히 인사를 나누게 됐지만 그뿐이었다. 다음해 2월 내 생일날이었다. 그날도 조선호텔 클럽에서 공연준비를 하고 있는데 노란 장미 100송이가 배달되어왔다.

“I’m so glad I met you finally(마침내 뵙게 되어 아주 반갑습니다).”

꽃다발 속에 꽂힌 카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 매일, 거의 한 달 동안 갖가지 색깔의 장미가 100송이씩 배달됐다. 미남인 데다가 말 솜씨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망치듯 LA에 있던 큰 오빠 집에 가서 머물고 있을 때 그가 그곳으로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나를 초대했다.

아픈 기억과 상처를 남긴 이혼을 한 직후라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서울 정도로 인내심이 강한 노력형이라 절대 ‘노’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가 얼마나 나를, 내 노래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고, 그의 초대에 응하게 됐다.

뉴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문화와 예술의 집중지, 비즈니스·학문·패션·유행의 중심지인 뉴욕!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한번쯤 뉴요커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뉴욕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더구나 뉴욕은 젊은 시절 내 꿈을 키웠던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내 모습을 지켜보았던 이탈리아 남자 아르만도 게디니와 함께였다.

그는 순수 이탈리아 혈통으로 토스카나 지방 피렌체 출신이다. 15~16세기 서양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다. 유럽에서 4번째로 큰 성당이라는 두오모 성당도 있다. 이탈리아의 대귀족 메디치 가문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피렌체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다. 역시 피렌체 출신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도시 곳곳에 있다. 아르만도 게디니는 피렌체 출신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다. 그의 양친도 피렌체 출신이었는데, 아버지는 아주 유명한 화가였고, 어머니는 한때 영화배우를 했을 만큼 뛰어난 미인이었다.

주로 초상화를 그렸던 그의 아버지는 멕시코 대통령 내외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멕시코에 초청되면서 이탈리아를 떠났다고 한다. 그가 10대 초반 무렵이었다. 한동안 멕시코에 머물며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리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대학을 마칠 무렵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초상화를 그리게 됐고, 그래서 가족들 모두 미국 시카고로 옮기게 됐다고 한다.

패티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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