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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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며칠째 계속 잠이 오지 않았다.불면의 파도 사이로 우변호사 모습이 떠오른다.여자에게 있어 남자란 대체 무엇인가.
『남편의 사랑 안에서 자랄 수 있어야 가장 행복한 아내라 할수 있어.』 행복론에 대한 얘기가 오갔을 때 어머니는 이같이 주장했었다.
그 말엔 확신이 배어있었다.어머니야말로 「남편의 사랑 안에서자란 아내」였기 때문이다.워낙 총명하고 아름다웠던 어머니지만 그녀의 지성과 미모의 태반은 아버지가 발굴하고 가꾼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그런 아버지가 멋있었다.
아리영이 바란 것도 따지고 보면 「남편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는」 일이었다.그러나 남편은 그런 염의도 내지 않았거니와 현재의 아리영 조차도 벅차했다.
남자는 흔히 「햄릿형」과 「돈 키호테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햄릿은 회의(懷疑)하는 사색 패턴의 남자요,돈 키호테는 저돌적인 행동 패턴이라고나 할까.
어머니에 의하면 남자는 또 「프로메테우스형」과 「헤라클레스형」으로도 나뉜다 한다.둘 다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지혜의 신이다.항상 인간의 편이었다.그는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제우스신과 늘 맞선다.번번이 제우스가 졌다.제사 상에 올린 짐승고기를 신과 인간이 나눠가졌을 때도 그랬다.
프로메테우스는 뼈다귀를 비곗덩어리로 싼 것과 살코 기를 가죽으로 싼 것중 어느 쪽이든 제우스더러 먼저 고르라고 했다.제우스는 탐스런 겉모양에 속아 비곗덩어리 쪽을 골랐다.이 일로 인하여 인간은 그로부터 줄곧 살코기를 먹게 됐다 한다.인간에게 앙심품은 제우스신은 불의 공급을 중단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풀포기 줄기 안에 불씨를 숨겨 몰래 전함으로써 불이 없어 곤경에 빠진 인간을 구했다.수선화 꽃심에 불씨를 숨겨 전했다는 얘기도 있다.
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산 꼭대기 큰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버린다.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를 풀어 준 것은 바로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다.행동의 신이지만 그에겐 지혜가 없었다.영웅적인 행동에는 반드시 지혜가 따라야 한다.헤라클레스로서는 누구보다도 프로메테우스가 필요했다.
프로메테우스와 헤라클레스의 동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지성과 행동의 제휴다.
「프로메클레스」.지성과 행동력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남성을 어머니는 이렇게 부른다며 웃었다.
『그럼 우리 집에도 프로메클레스 한 분이 계시는 셈이네.』 아리영은 농담하면서 언젠가 자기 앞에도 프로메클레스가 나타나리라 막연히 믿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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