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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익·건강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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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민 건강권의 강화를 요구하며 시작된 ‘촛불문화제’가 과격한 거리 시위로 바뀌더니 급기야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으로 비화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안이한 대응이 원인을 제공했다. 정부는 검역주권을 확보하는 한편, 원산지 표시 강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억제 등 만반의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국민의 불안을 줄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서민 먹거리’에 대한 정부의 무신경과 무성의를 질타하는 여론을 소홀히한 것도 사태를 키웠다.

성난 민심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이탈과 관련이 있다. 청계광장 촛불은 영어몰입교육·강부자 내각·총선 공천·재벌 프렌들리 정책 등에 실망한 시민들이 ‘자발적 행동’으로 보여준 ‘불신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광우병 괴담이 가두시위로까지 번진 데는 자주 및 반미 주창 세력의 조직적 개입과 교묘한 선전·선동에도 기인한다. 현 정부의 한·미 동맹 복원 노력과 이전보다 강경해진 대북정책에 강한 불만을 가진 친북 좌파 세력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

5월 6일 이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란 연대체가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다. 외형상 1700개의 시민단체로 구성돼 있으나, 실은 ‘진보연대’가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전국연합’ ‘통일연대’ ‘민중연대’ 등 3개 친북 좌파단체를 통합·계승한 연합체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범대위)’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광우병 국민감시단’ 등과 긴밀히 연계해 활동하거나 그런 전력을 갖고 있다.

진보연대는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란 ‘경제 이슈’를 ‘건강권 확보 및 민중 생존권’ 투쟁으로 전환시키고, 다시 ‘이명박 Out’(대통령 탄핵) 혹은 ‘식물 정권화’란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이 시대의 4·19’ ‘제2의 6월 항쟁’이란 말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이 같은 양상은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승화시킬 것을 주문한 레닌의 고전적인 대중투쟁전술을 연상케 한다. 정책 비판을 넘어서서 합법정부를 마구 흔드는 게 과연 진보인지 의문이다.

사실 이번 사안은 합리적인 토론과 사후대책 보완 등으로 실질적인 해결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특정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가 국민의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 점이 있다. 반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을 확률은 4억8000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광우병은 지구에서 사라져 가는 병”이라는 점을 강조한 국내외 전문가의 견해나,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SRM(특정 위험물질) 부위가 아니면 안전하다”는 국제수역사무국(OIE) 사무차장의 말은 외면당했다. 과학적 전문지식을 요하는 사안에서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

요컨대 우파의 사려 부족, 무능과 무책임, 집권세력의 분열과 방심이 대선과 총선 패배로 숨죽이던 좌파에 쇠고기란 민생문제와 뿔난 민심을 배경으로 대반격할 기회를 준 것이다. 야당 등 반이명박 세력은 여기에 편승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하고 있다.

촛불집회의 목적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확실하게 챙기라는 요구를 정부에 전달하는 데 있고, 이미 상당 부분 달성됐다. 이제 선량한 시민들은 반정부성 정치집회와 불법적인 가두시위 참가를 중단하는 게 옳다.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쇠고기 파동 수습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문책성 인사를 포함해서. 또 배후 조종 세력은 엄단해 불법 집회·시위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논의를 한 끝에 최선의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헌법소원 등 법에 호소하는 길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길거리로 나가 장외투쟁을 벌이며 정국의 파행을 조장하는 일은 법치와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정부·여당은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 ‘국익’과 ‘건강’을 조화시키는 방향에서 슬기롭게 대처해 주길 바란다. 법과 원칙의 무시는 건강한 사회 건설과 선진국 진입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국민들도 명심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