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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는 직원 붙잡을 미끼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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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월급쟁이만 고달픈 것이 아니다. 사장도 고달프다. 시스템에 의한 경영이 이뤄지는 대기업 CEO와 달리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은 더 괴롭다. 그들이 컨설턴트에게 털어놓은 고민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오늘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이메일 확인 부탁합니다.”

강 사장은 며칠 전 퇴근 후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받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문자로 통보해온 것이었다.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새로 들어온 이메일을 열어보고는 또다시 깜짝 놀랐다. 지난 달에 새로 채용한 직원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신입사원이 사장에게 직접 이메일로 사직서를 보내다니? 인사팀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늦은 밤이어서 강 사장은 인사팀장에게 확인할 수도 없고 하여 하룻밤을 넘겼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인사팀장을 불러 해당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인사팀장은 오히려 깜짝 놀라며 즉시 사직서를 제출한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출근을 확인했으나, 그 직원은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직원은 오히려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왜 출근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강 사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직원이 상사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곧바로 사장에게 이메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표 수리 절차나 인사규정도 무시한 채 직속 상사와의 협의나 동의도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 퇴직할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10명 넘게 채용한 대졸 신입사원 중 1년도 되기 전에 벌써 20% 가까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물론 더 좋은 곳이 있어 옮겨 간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가 그리 나쁘지도 않고 사회적 평판도 괜찮은 편인데 직원들이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마음을 강 사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회사 사장들에게 물어 보니 그곳 역시 마찬가지란다.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들은 청년실업 100만 명이라는 소문의 진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강 사장은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일자리가 없는가? 배가 고프다며 일이 힘들다니? 뭐가 힘들다는 것인가? 돈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데 기회가 없다니? 무슨 기회가 없다는 말인가? 무슨 배짱으로 원하는 일만 하기를 바라는가? 지금 회사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무엇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 사장은 며칠 전 공인회계사인 친구와 술 한잔을 하다 또 하나의 가슴 답답한 말을 들어야 했다. 가끔 회사 경영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느닷없이 무슨 말인지 황당했으나 친구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니 내심 그럴 듯했다.

강 사장은 3년 전 미국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큰집 조카를 데려다 경리과장직을 주고 모든 살림을 맡겼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조카의 수상한 행동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해외출장을 가려고 공항으로 나가다 여권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사무실에 들렀는데 경리과장인 조카가 전 직원을 모아 놓고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 연말에는 고객관리를 하겠다며 비싼 양주를 10병이나 사 오더니, 연초에는 기관 공무원들을 접대하겠다며 수입 명품 골프채를 사면서 골프 연습장을 1년씩이나 예약했다.

강 사장은 요즘 여러 면에서 회사 사정이 어려워 직원을 줄이기 위해 신입사원 채용을 미루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20년간 별 탈 없이 유지해 왔는데 최근 들어 3년 연속 적자가 나고 있다.

경기불황 탓도 있겠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 경비가 급속히 증가했다. 조카를 경리과장에 앉힌 뒤부터 더욱 심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사업을 물려받은 강 사장은 회사 경영에 조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데 대해 내심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회사의 매출이 줄고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을 가까운 친구가 먼저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감사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걱정이었다. 설혹 무슨 증거라도 나오면 어떻게 조카를 대해야 할지, 그게 더 걱정됐다. 조카의 비리가 발견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였다.

집안 식구들 모임에 나가면 그들이 뭐라고 할지, 아니라고 잡아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른 척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없던 일로 하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전국에 걸쳐 20여 개의 스포츠용품 매장을 운영하는 조 사장은 최근 임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 사장은 대학 동창이면서 같은 직장에서 10년 넘게 함께 일한 친구 한 명을 임원으로 선임해 함께 일하고 있다.

조 사장은 그 친구보다 7년 먼저 회사를 나와 식당을 차려 돈을 번 후, 2년 전부터 지금의 스포츠용품 매장을 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해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성실하고 유능한 친구가 회사를 나온다고 해서 임원으로 채용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일도 열심히 하고 사업 실적이 좋아 부사장까지 맡겨 전국 매장을 관리하게 했다.

그런 그가 최근 골프에 빠져 사업을 소홀히 하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여자문제도 있다고 하나 확인된 바가 없어 모른 체하고 있다. 조 사장만 없으면 그는 사무실에서 퍼팅 연습을 한다.

전국 각 도시의 매장을 돌면서 고객의 흐름과 실적을 분석해야 할 부사장이 평일에도 골프를 치러 가고 근무시간에도 퍼팅 연습만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면 냉정하게 한마디 할 수 있겠으나 죽마고우에게 차마 차갑게 대할 수 없어 조 사장은 고민하고 있다.

친구를 잃는 것이 나을지, 사업을 접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지만, 사업 규모로 볼 때 회사 문을 닫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냥 간단히 그만두라고 통보할까? 모른 척 하고 그냥 내버려둘까?

조 사장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영업실무에서 최근 3년간 최고의 실적을 낸 민 부장에게 새로 개설한 대리점을 직접 경영하도록 기회를 주었는데 형편없이 낮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민 부장은 조 사장이 창업 당시부터 온몸에 땀을 적시며 불철주야 함께 뛰어다닌 고향 친구였다. 워낙 열심히 일하고 실적이 뛰어나 웬만한 대리점 사장보다 수당이 많았다. 그런 그가 막상 대리점 경영을 맡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조 사장은 민 부장에게 맡긴 대리점을 방문했다가 민 부장이 직원들을 모아 놓고 낮은 영업실적에 대해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리더가 부하들에게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조 사장은 “영업사원들에게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보다 냉정한 평가와 올바른 지도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이 바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고향 친구에게 차마 그 말을 해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새로 만든 대리점을 1년도 안 되어 닫을 수도 없었다. 어쩌다 친구가 그렇게 되었을까? 설마 실무적인 현장영업과 최고 자리에 앉은 리더십이 다른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20여 명의 기능직 사원과 서너 명의 관리직 사원을 두고 철강 제조업을 하던 최 사장은 최근 시름시름 앓고 있다.

30년 전 영등포 변두리에서 서너 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선반 두 대와 용접기계 한 대를 갖고 가내 공업소를 열 때까지만 해도 최 사장은 가방 끈이 짧았으나 이후 야간 공업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거쳐 얼마 전 정규 대학원까지 마쳤다.

열정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에게 실망을 안겨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의 직원들이었다. 관리직이나 기능직을 막론하고 5~6년 전부터 생산성이 저하되며 이직률이 높아지고 있다. 매년 남들만큼 월급도 올려 주고, 대부분의 생산설비를 자동화로 바꾸어 힘든 일도 별로 없는데 직원들은 자꾸 회사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월급을 많이 줄 수도 없고, 대기업처럼 복리후생을 충분히 지원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회사를 나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고 싶지만 딱히 월급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업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얼마 전 길 건너 작은 공장이 다른 회사로 넘어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연히 길을 건너다 만난 그 회사의 사장은 다름 아닌 한 달 전 최 사장 곁을 떠난 공장장이었다.

그 회사의 사장이라면서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는 그를 얼떨결에 반갑게 대했으나 곧바로 얼굴이 굳어졌다. 그 주위에 모여든 직원들은 모두 최사장이 데리고 있던 직원들이었다. 서너 명을 동시에 데리고 나가 회사를 차린 것이었다.

그럴 수 있다며 서운함을 삭이고 돌아왔으나 이틀도 되지 않아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있었다. 공장장은 사람만 빼 간 것이 아니었다.

최 사장이 수억 원을 들여 개발한 기술까지 함께 가지고 간 것이었다. 듣자 하니 정부기관에 공식적으로 기술등록까지 하고 최근 인도와 중국에 기술 이전까지 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사장인 자신은 직원들 복리후생을 위해 신경 쓰고 있는 사이 직원들은 회사를 망치려고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발가벗겨진 느낌으로 쓰러진 최 사장은 결국 앓아 누웠다.

그러던 중 최 사장은 며칠 전 회사 술자리에서 한 직원이 귀띔했던 말이 생각났다. 관리자 중 몇 명이 직원들과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최 사장도 그런 소문을 이미 여러 번 들었던 터였다. 그러나 굳이 그들에게 이유나 배경을 묻고 싶지는 않았다.

최 사장으로서는 그들 때문에 자신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다 그들의 능력과 업적은 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들, 경영 관리자들이 문제는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그런 걱정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송 사장은 대기업 임원으로 있다 얼마 전 중소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옮긴 경우다. 대표이사이면서 사장을 맡았으니 남들은 최고경영자로 성공했다고 말한다.

송 사장이 사장을 맡은 중소기업은 겉으로는 중소기업이었지만, 대기업의 계열사로서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신기술을 개발한 회사였다.

때문에 송 사장 역시 처음에는 대기업에서의 경력과 탁월한 학벌을 바탕으로 의욕에 넘쳤고, 또 제대로 한번 중소기업을 경영해 대기업 못지않은 탄탄한 회사로 키우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상황과 잘잘못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개인기업에서 성장한 사기업인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회장이 뒤에 버티고 있으며, 무엇보다 500명도 되지 않는 회사에 파벌이 심해도 너무 심한 상태였다. 여러 계열사를 구조 조정하는 과정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끼리끼리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K대·S대·D대 라인이 있는가 하면, 남쪽파·동남파·중부파 등으로 모임이 잦다고 했다. 사규에 정한 직제가 있고, 세부 지침에 의한 직무규정이 있음에도 중요한 의사결정은 파벌과 서열에 따라 정해진다고 하니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올 초에는 계열사 출신별로 신년회를 열고 등산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10년도 되지 않은 회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그냥 회사를 그만둘까?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으로 인해 출근하기조차 싫다. 사장이 이러니 직원들은 오죽하랴?

두 번째 문제는 회사 소유주인 회장의 관심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수억 원을 들여 신기술을 개발하려고 하지만, 회장은 그 돈으로 주식·펀드·부동산에 투자하려고 한다.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얻고 국가의 지원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방해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회사 소유주인 회장이었던 것이다.

송 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이 거의 없다.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배제되고, 정책수립회의에도 불러 주지 않는다. 회장은 직원들이나 잘 관리하라고 하는데, 정작 직원들은 송 사장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바지저고리로 보이는 전문경영자로서 출퇴근이 편할 리 없다.

곧바로 다른 곳으로 옮겨갈까 생각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누군가는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 그나마 현재 상황의 회사 직원들은 누가 관리할 것인가? 회사가 망해 문을 닫을 시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 때까지는 누군가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50대 중반에 들어서는 그에게 지금만큼이나마 고액의 연봉을 주며 임원으로 앉히려는 데는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사장들의 8가지 고민

1. 마음이 떠나 있는 직원들 애사심이 없고, 직업의식이 부족하다. 이직할 궁리만 한다.
2. 리더와 조직 구성원의 각기 다른 생각 관리자와 직원, 직원 각 개인이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3. 대화가 부족하고 비전도 실종 의사소통이 안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다. 냉소적이고 무관심하다.
4. 각자의 욕구만 과다 표출 쓸데없는 회의가 많다.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5. 현실에 안주하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성공에 이르면 거기에서 머무르고 유지하려고 한다. 변화와 혁신을 귀찮게 생각한다. 현재에 만족한다.
6. 직원들에 대한 리더의 Empowerment 취약 관리자들이 주도적이지 못하다.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7. 회사 소유주의 부도덕성 윤리경영 부재, 문어발식 경영, 도덕적 해이, 과다차입경영 등.
8. 노사 갈등, 직원들의 비전과 목표 부재 인재를 경시하며 공부하지 않는다. 창의력이 약하다.
(*2007년, 필자가 연간 강의한 단체와 모임에서 직접 청취한 중소기업 사장들의 고민과 걱정)

글 홍석기 (주)META Consulting 공동대표·서울디지털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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