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홈뉴패밀리>18.아내 직장따라 이사가기 늘고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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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아내따라 강남가는」남편이 늘고 있다.가족의 주거지역을 결정할 때 가장인 남편보다 아내의 직장이나 출퇴근 여건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추세가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것.
직장이 서울 신촌에 있는 회사원 권명수(40)씨는 양천구목동에 살다 최근 강남구개포동으로 이사했다.고생끝에 박사과정을 마친 아내가 수원 모(某)대학 전임강사 자리를 따냄에 따라 아내의 직장 가까운 쪽으로 집을 옮긴 것이다.
『제 직장이나 아이들 학교를 생각하면 목동이 훨씬 조건이 좋았지만 집사람 출근에 거의 두시간이나 걸렸거든요.어차피 아내가자기 직업을 포기하지 못할 바에야 엄마 역할을 하는데 덜 불편한 쪽을 선택한 거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직장이 좀 멀어도 좋다」는 쪽으로 남편들의 의식이 변하고 있음을권씨는 잘 보여준다.
아내따라 강남갔다가 아예 직장을 옮긴 사례도 있다.인천의 종합병원에 의사로 취직한 아내를 따라 인천으로 이사한 한 피부과전문의는 서울북아현동의 병원으로 출퇴근을 계속하다 최근 집 근처에 개인병원을 열었다.아내의 취업 때문에 남편 의 근무환경 자체가 크게 달라진 셈이다.
한국여성개발원에 근무하는 여성 직원이나 연구원들의 상당수는 집이 직장근처인 서울불광동 일대다.서울서초동에 사는 한 여성개발원 직원은『집이 불광동이 아닌 여성은 팔불출로 취급된다』며「아내따라 집옮기기」는 의사나 교수.연구원.기자 등 전문직 여성들의 경우 특히 많은 것 같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MBC나 KBS 등에 다니는 여성중에는 서울여의도 거주자가 상대적으로 많다.하지만 이런 경향을 단순히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이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힘들다.KBS 박태경(朴台卿)PD는『가정을 꾸려갈 의무는 남편.아내 모두에게 있는것인데 우리나라 남편들은 그 역할을 자의반 타의반 포기하고 사는 상태』라며 아내따라 이사하기는 그 한 반증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런 반증은 차가 한대일 경우「운전권」을 아내에게 양보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똑같이 직장에 다니는 부부일지라도 아이 병원데리고 가기,유치원 방문 등은 모두 아내 몫이므로 자가용은 자연스레 아내 차지가 된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서울대 농가정학과 한경혜(韓慶惠)교수는『학문적으로도 이민.이사 등 가족 이동에 대한 부부간의 의사결정형태는 아내의 취업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한다.그러나「남편의 양보는 직장에서 집으로 일터가 두번 바뀌는 아내의 2교대(Second Shift)를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라는 게 韓교수의 견해.그렇다고 해도「아내따라 강남가기」는「가정의 중심은 언제나 가장(家長)이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오랜 고정관념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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