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클린턴 빠진 APEC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오사카(大阪)성은 오사카를 상징하는 명물이다.
16세기 일본을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자신의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축성했다.웅장미와 뛰어난 조형미가 압권이다. 19일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장소로 일본은 오사카성을 선택했다.
오사카성 안 서편에 있는 영빈관은 이번 회의 때문에 만들어졌다.넥타이를 풀어제친 평상복 차림의 각국 정상들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일본총리가 권하는 일본차를 들며 오사카성의 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일본이 이번 회의에 쏟은 정성은 대단하다.회의비용으로만 100억엔(약800억원)을 쓴 걸로 알려지고 있다.전국에서 차출된2만5,000명의 경찰 숙식비에 가장 큰 돈이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또 APEC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100억엔을 APEC사무국에 조건없이 쾌척했다.회의기간 내내 시내곳곳에서 엄격한 교통통제가 실시됐다.통행량 자체가 크게 줄어 시민보다 경찰 수가 더 많은 느낌을 주었을 정도다.오사카 시내 최고급호텔들은 회의기간중 아예 일반손님을 받지 않았다.오사카에서 열린최초의 대규모 정상회의라는 점 때문인지 시민들도 불편을 잘 견디는 모습이었다.각국 대표단이 투숙한 호텔과 회의장,프레스센터등에 동원된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도 인상 적인 것이었다.이번 회의를 계기로 오사카가 본격적인 국제도시로 발돋움한다는 공통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불참으로 사실상 반쪽대회로 끝나고 말았다.일본정부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일본언론들은 연일 섭섭함과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있다.일본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재선에 더 큰 비중을 둔 탓이라는 비판에서 양국관계의 근본적 이상신호라는 해석에 이르기까지갖가지 얘기가 다 나오고 있다.
당초 일본정부는 이번 회의를 자국의 외교력을 과시하는 기회로삼았다.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야심차게 마음먹고 이번 회의를 준비했던 것이다.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번주(藩主)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패권을 과시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아태지역 정상들에게 일본의 힘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미국의 국내문제 하나로 일본의 야심은 치명상을 입었다.일본정부는 이번 회의를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클린턴의 불참이 준 아픔을 못견뎌하는 일본의 모습에서 아직은 어쩔 수 없는 일본의 한계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오사카=배명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