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현장] '진짜 진보'-'진짜 보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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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낙주 전 국회의장을 대신할 수 있는 창원의 큰 인물로 키워주십시요.(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경제난을 극복하고 서민들이 잘 살수 있도록 국회 개혁을 위해 원내로 보내 주십시요.(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재선을 노리는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52) 의원과 원내 진출을 벼르고 있는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63) 대표가 맞붙는 경남 창원 을구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다.

인구 50만,유권자 16만명의 창원 을구는 현역 의원의 프리미엄이 별로 없다.조직이나 인지도 등에서 이 의원이 오히려 권 대표보다 떨어진다.

두 후보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맞붙었다.5천여표 간발의 차이로 이 의원이 당선됐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상황이 다르다.최근 잇따라 발표된 여론 조사에서 권 대표는 1위를 달리고 있다.

17일 KBS 창원총국이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에 의뢰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권 대표는 28.0%,이 의원은 탄핵 역풍을 맞아 14.8%로 크게 처졌다.8일 마산MBC 여론조사에서도 권 대표 32.1%, 이의원 16.8%로 거의 더블 스코어로 권 대표가 리드했다.

진보와 보수의 격전장이라 언론의 관심은 뜨겁지만 창원 시민들은 '지역 경제 살리기'가 가장 큰 관심사다.창원 인구는 블루 컬러 노동자가 11%,사무직이 21%다.생활 기반은 창원대로 주변에 위치한 창원 공단과 도청을 중심으로 한 관공서가 대표적이다.

창원시 중앙동에서 식당을 하는 김영순씨는 "권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아쉽게 떨어져 창원 시민들의 동정을 얻는 편이고 이 의원은 무난한 후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며 "누가 이기던 간에 다 죽어가는 창원 상권을 살려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공천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이 많았던 열린우리당은 27일 경남약사회 회장 출신인 박무용(朴武容.48) 후보를 공천했다.우리당의 경우 민노당과 전략적 연대를 고려해 공천을 하지 않기로 했다가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고 민노당측에서 거세게 반발하면서 뒤늦게 공천을 했다.

우리당 공천 직후인 27일 조선일보의 여론 조사에서 권 대표(45%)가 이 의원(19.7%)을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우리당 박무용 후보는 16.5%였다.

◇서민이 잘 살려면 민노당을 찍어야=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놀랄 일이 일어날 겁니다."

원내 진입을 자신하는 권영길 대표의 자신에 찬 말이다.창원 을구는 서민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1석 확보의 전략적 교두보다.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권 대표는 강성 노조로 유명한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그래서 그의 이미지는 붉은 머리띠다.외형적으로 강성으로 보인다.특정 계층만 대변한다는 불안감도 안고 있다.그는 이 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그래서 지난 4년간 지역구를 샅샅히 훑었다.주민 들과 여러번 만나 인간 권영길의 살아 온 길에 대해 얘기했다.만난 이후에는 주민들 사이에 '따뜻한 사람인데…'라는 평가가 입소문으로 퍼졌다.왜곡되고 과장된 그의 강성 이미지는 눈이 녹듯 사라졌다.

"가장 창원적인 것이 국민적인 것 입니다.창원의 문제에 한국의 모든 문제가 녹아있지요."

이 점에 대해 그는 대형 할인점 진출로 설명한다.

"2년전 창원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소규모 상점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할인점의 신규 고용창출은 400여명에 불과한데 이로 인해 망하는 상점은 1000여개 입니다.무려 1만명이 아무런 지원이나 대책없이 생활 기반을 잃었습니다.창원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죠.이같은 문제는 전국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절망의 정치를 희망의 정치로'라고 내걸었다.여기에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집중 부각하기로 했다.비정규직 차별 철폐.중소기업 육성.서민경제 활성화 등도 집중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양대 노총에 가입한 근로자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비하면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원내로 들어 가면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사회간접임금(교육비.주택비 등을 지원)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해 그는 "노 대통령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여론을 무시한 국회가 민주주의를 말살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헌법재판소에서 최단 시간내에 종결해 더 이상 국력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정책공조가 가능한 민노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며 창원을구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을때 권 대표는 발끈했다.

"우리는 가만 있는데 자기들끼리 왜 후보를 내느니 마느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우리가 언제 한번이라도 도와달라고 한 적 있습니까.이념과 노선이 다른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어떻게 정책 공조를 할 수 있습니까." 불쾌한 표정이 역력한 권 대표다.

남은 한가지 걱정은 민노당의 인기가 높아도 실제 투표와 연결되지 않는 그동안 투표 결과였다.투표소에 들어가면 마음이 바뀐다는 것이다.그러나 권 대표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보정당의 국회진출은 모든 진보 세력의 염원이자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요즘 예상 외로 국민들에게 지지를 많이 받고 있어 지역구 7~8석에 전국 15% 득표로 총 15석 이상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의정 활동 심판해달라="권 대표 보다 조직이나 자금력에서 열세입니다.한마디로 현역 의원 프리미엄이 하나도 없습니다.지난 4년간 성실한 의정활동을 통해 심판을 받겠습니다."

이 의원의 볼멘 소리다.지역구 현역 의원인데도 불구하고 인지도 마저 권 대표에게 뒤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4년간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활발한 의정 활동을 했다고 말한다.창원지역 교통방송 건립과 10년간 창원 시민의 숙원 사업이었던 국도 25호선(창원대-창원시) 해결을 가장 큰 공적으로 꼽는다.또 율사 출신의 전문성을 살려 DJ정권의 부패 스캔들을 파헤치는 데 일조했다.이같은 의정 활동과 깨끗한 이미지,보수층에 대한 호소로 17대 총선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탄핵 후폭풍으로 흔들리고 있는 창원의 보수층 유권자에게는 '젊고 능력있는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달라고 주문한다.재선 될 경우 창원을 정보화 도시로 만들겠다고 한다.경제 성장이라는 파이를 키울 수 있도록 기업 장려 정책을 우선적으로 내놓겠다고 덧붙인다.

그는 한나라당의 탄핵 의결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이다.

"법치주의를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행위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수차례 걸친 야당과 선관위의 경고를 무시한 점이 탄핵을 몰고 왔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의 민주화에 대해선 쓴소리를 한다.

"앞으로 국회는 의원 개개인의 헌법 기관성을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당론 보다 자유투표를 확대시켜야 합니다.한나라당은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해 국민 정서를 제대로 읽는 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민노당의 선거 공약에 대해선 한마디로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라고 주장한다.특정 계층만을 위한 달콤한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전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이같은 포퓰리즘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선거 운동 기간 집중 홍보할 계획이다.

경기고.서울 법대 출신인 이 의원은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창원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설했다.학력과 경력으로 보면 그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직계 후배다.의정 활동에도 그의 도움이 컸다.

16대 총선에선 황낙주 전 국회의장을 변론하다 황 전 의장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지역구를 물려 받았다.당시 경남에 분 한나라당 바람과 함께 무난히 당선됐었다.현재 의원 사무실도 황 전 국회의장의 사무실을 그대로 쓰고 있을 정도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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