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이재오-⑤<끝>그가 꾸는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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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이 ‘종횡무진 인터뷰’를 선보입니다. 세상에 호기심 많은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인터뷰어로 나섭니다. ‘예쁘고 착한’ 인터뷰가 아닙니다. 뻔한 질문 하지 않습니다. 판에 박힌 대답은 버리겠습니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콕콕 찍어냅니다. 정치인·기업인·예술인·대중문화인… 가리지 않고 만나러 갑니다. 그때그때 형식이 달라집니다. 격주로 찾아갑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첫 번째 만난 사람은 한나라당 이재오 전의원입니다.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간사였던 박경철과 집권 한나라당의 실세 이재오, 불꽃 튀는 14시간이었습니다.

◈ [동영상] 한나라당 실세 이재오 '불꽃튀는 14시간 인터뷰' | [화보]



(17대 국회의 임기는 29일로 끝났다. 인터뷰 시점 상 여기서는 ‘이재오 전의원’을 ‘이 의원’으로 싣는다.)

그가 꾸는 꿈 …

인터뷰는 소백산 가고 오는 길과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의 집은 23평짜리 단독주택이다. 거실 곳곳이 조금씩 주저앉아 바닥이 평탄하지 않았고, 욕실과 세탁실을 겸한 화장실은 샤워를 하기에도 그리 넉넉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지난 총선에서 그가 돈을 벌어 평창동으로 이사 갔다는 루머는 확실하게 사실이 아니었다. 곳곳에 쌓아 올린 작은 가재도구들은 집을 부수지 않고서는 이사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전 재산이 2억을 조금 넘는다는 그의 집에서 그가 청빈하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태생적으로 영원한 촌놈이라는 그가 좋아한다는 영화나 연극, 그리고 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의 집 책상과 서가에 있는 손때가 묻은 책들로 보아 미루어 짐작이 가능했다.

- 다시 그에 대한 부정적 시각들에 대해 물었다. 오해이건 편견이건 사실이건 한번은 그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할 이야기였다. ‘총선 패배를 어떻게 보십니까? 억울하십니까?’

지역민의 심판, 아니 우리지역구는 국민의 심판입니다. 선거에 졌고 패장입니다. 유구무언이고 모두 내 잘못입니다.

싸워서 얻는 것이 아니면 얻은 것이 아니라는 지론을 가진 그의 답변으로서는 다소 김이 빠지는 답이었다. 그래서 다시 그 의미를 물었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 선거 패배원인으로 대운하에 대한 반감, 공천과정에 대한 불신, 박 전대표 지지자들의 비토, 지역민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이유로 들었다. 여론이 짚고 있는 이유와 비슷했다. 심정적으로는 억울하지만 정치인은 선거로 심판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정계은퇴를 고민했다고 했다.

- 그래서 지리산으로 들어가신 건가요?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정치를 계속한다는 뜻이고요?

패장은 말이 없고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었죠. 패장이 됐으니 모든 업을 안고 정계를 떠나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했지요.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정치밖에 없다는 생각이 이르렀지요. 그래서 전장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전투에 나설 수는 없어요. 지금 한나라당에는 MB를 뒷받침할 지도력을 가지고 치고 나갈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내가 나서면 안 된다고 합니다. 권력욕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그래서 안 나서면 이번에는 대리인을 내세운다고 비난을 하지요. 그래서 전장에는 돌아왔으나. 이대로 공부하러 떠나는 겁니다.


- 기약 없이 떠나시며 걱정은 없나요?

한 정당이 권력을 잡으면 안주하게 됩니다. 적당히 봉합하고 안주하려는 유혹이 생기죠. 하지만 그럴수록 변화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면 야심이나 사심으로 치부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당분간은 현실정치에서 멀리 떨어져서 6자 회담 후 남북문제, 동아시아 문제, 동북아 번영과 우리민족의 먹거리 문제 등을 연구하고 공부할 생각입니다. 이제 내가 그 동안 배운 건 다 써먹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 이의원께서 보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요?

일제 때는 항일이 시대정신이고, 해방 후에는 건국이 시대정신이고. 건국 후에는 올바른 정부수립 시대정신이고 군사독재시절에는 민주화 투쟁이 시대정신이었습니다. 그 고비마다 굴절하고 시대정신과 반대에 선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정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같이 서야 합니다. 바로 민족의 평화와 번영이죠. 나는 그게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그럼 문경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만 명이나 모이고, 집에 정치인들을 초대해서 밥을 대접하는 일들은 구시대적 정치행태라고 생각은 안 하십니까?

인중승천(人衆勝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긴다는 뜻이지요. 정치는 세력입니다. 세력은 사람이고요, 나는 MB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대통령 당선 후에 뒷풀이를 한 겁니다. 내 출판기념회를 핑계로 그때 애쓴 사람들이 모두 모여 뒷풀이 마당을 연거죠, 스스로들 모인 겁니다. 내가 무슨 세를 과시하거나 하려고 사람들을 모은 게 아니라는 뜻이지요.

오늘 소백산 등산에도 관광버스 8대가 왔다. 모두 지역구 주민들이었다. 예전에는 30대씩 움직였다니 그가 지역구 관리를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산악회는 자발적 모임이다. 자체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 동네아저씨처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조직력과 친화력은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소백산 인근 지역의 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 그리고 당협위원장들이 찾아왔다. 그가 원했건 그들이 스스로 찾아왔건 모를 일이나, 정치는 세력이라는 그의 말이 되새겨지는 장면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인사말을 통해 ‘정권도 바꾸고 MB대통령을 만들고 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제 지난 것 모두 털고 잊어버리고 다시 출발하자’ 고 말했다. 특히 몇 번이나 반복되던 ‘다시 출발하자’는 말이 묘한 공명이 되어 돌아왔다.

-그럼 그 시대정신을 위해 본인이 꿈을 꾸시지 왜 MB를 선택했습니까?

하하. 꿈도 체급이 맞아야 합니다. 나는 포부만 있지 체급이 플라이급이라면 대통령은 헤비급이었어요. 당연히 MB를 지지하고 그를 통해 이루어야지요.

- 그럼 이제는 체급이 많이 올랐으니 꿈을 꾸시겠습니까? 솔직히 대답해 주시죠, 정치인이 야망이 없으면 그게 정치인입니까? 이 의원께서는 대통령이 꿈입니까?

………장내 장외에서 무려 40년간 정치를 해온 사람이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이 없다면 정치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 대답입니다.

긴 고민 끝에 그가 내놓은 대답이다. 나는 차라리 그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정치하는 사람이 야망이 없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면 꿈이 되고, 그가 그렇게 말하면 권력욕이 된다. 그의 처지가 그렇다. 어떨까. 그가 돌아오는 시점에는 그것을 꿈이라 부를 수 있을까? 밤 10에 그의 집을 나오며 인사를 나눴다. 오프를 전제로 그가 박 전대표를 평한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그는 과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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