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살롱>장태완 재향군인회장 부인 이병호 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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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무인(武人)의 상징」「참 군인의 표상」「진짜 사나이」….작금 장태완(張泰玩.64)재향군인회 회장에게 쏟아지는 국민적 찬사다.군인 본연의 의무와 책임을 내팽개친 일부 정치 군인에 의해 뒤틀려진 부끄러운 역사를 저마다 개탄하는 분위 기 속에서 12.12 당시 꿋꿋하게 수경사령관으로서 소임을 다한 그에게 많은 국민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다.그런 張회장과 부인 이병호(李炳浩.60.서울강남구대치동 우성아파트)씨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구,그 영감 말도 못해요.괄괄한 성격에다 자기 마음에 안맞으면 못참는 성미예요.요즘 TV에 나오는 그대로예요.일선 지휘관 시절 부부동반 모임에 가면 한 귀퉁이에서 마음 졸여야 할 정도였어요.그 자리에 평소 군인의 본분을 저버 린 행동을 한 사람이 있으면 비록 상관이더라도 상을 엎어버리는 스타일이었거든요.그리고는 혼자 차 타고 가버려요.그러면 산골에서 다른 부대 사람 차를 얻어타고 집에 가는게 한두번이 아니었지요….』張회장이 평소 집에선 어떻느냐는 질문에 나이에 비해 예닐곱살은젊어 보이는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활달한 성격의 李여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강한 경상도 악센트로 남편 흉(?)을 늘어놓는다.
『그뿐 아니예요.당시에도 대령쯤 되면 대부분 서울에 집 한칸정도는 있었어요.우린 집이 뭡니까.마흔살에 장군 진급을 할 때도 원주에 있었어요.난 서울 지리도 몰랐어요.게다가 딱 봉해진봉급봉투는 사단장이 되고 몇개월 뒤에야 처음 받아봤어요.술을 좋아하는데다 성질은 급해 맨날 먼저 외상을 긋거나 돈을 내니 봉급을 고스란히 가지고 올 수가 있나요.』 그런 까닭에 그는 박봉인 남편 월급의 절반 정도로 가계를 꾸려나가야 했다.도저히안되니까 친정 아버지가 아이들 과자까지 매달 사서 부쳐줄 정도였다는 것.
『양구에 있을땐데 눈이 엄청나게 온 겨울이었어요.술을 마시면워낙 사람들 데리고 오기 좋아하는 성미라 그 날도 여러명과 함께 왔어요.밤에 찌개를 끓이라는데 10리나 떨어진 가게에 어떻게 가요.할 수 없어 부대에 말해 두부를 좀 가 져오라고 했어요.그런데 이 눈치없는 사병이 두부를 일곱모나 가지고 왔지 뭐예요.당연히 남았죠.아침에 영감한테 들켰어요.빌렸다고 둘러댔는데 혼쭐이 났어요.매사 이런 식이니 나머지는 말하나 마나죠 뭐.잔소리를 할 여지도 없어요.』 12.12후 변해버린 세상속에서「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의 뜻을 뼈저리게 느끼기도하고 남편이 홧병으로 심장 수술을 받는 등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맑고 밝은 천성을 간직하고 있는 李씨가 張회장을 만난건57년.張회장이 소령,李씨가 대구 효성여대 4학년때였다.전공은피아노.처음 약학과로 갔다가 2학년때 과를 옮겼다.서울로 못가게 한 집안에 대한 반발때문이었다.중매한 사람은 같은 마을에 사는 손위 시누이.평소 李여사를 좋게 보아온 張회장의 누나가 친정어머니에게 적극 매달려 서로 선을 보게 됐고 결국 성사됐다. 『처음 볼때 무서워서 혼났어요.오갈데 없는 군인이었어요.절대 결혼 안한다고 마음 먹었는데 친정어머니는 첫눈에 반했대요.
어머니의 강권으로 약혼을 했죠.』 그런데 약혼 기간이 자그마치3년이었다.결혼하려 해도 신랑이 돈도 없고 집도 없어 할 수가없었단다.
『돌아보면 군인의 아내로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아요.남자가가정과 자신의 일을 둘다 충실히 하기는 어렵잖아요.돈도,든든한줄도 없이 오직 투철한 신념 하나로 버틴 영감이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1주일에 두번 정도 헬스클럽에 나가고 무얼 좀 배우기도 한다는 李여사는 요즘 TV를 보면 그래도 속이 좀 시원해진다고 흐뭇해 한다.그러면서도 12.12 당시 남편의 행동은 특출난게 아니고 당연한 일이라고 겸손해 한다.
어려운 가운 데서도 항상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는 李여사.가슴 속에 자식을 묻은(슬하의 1남1녀중 외아들이 서울대재학시절 세상을 떴고 33세인 딸은 공무원과 결혼해 두딸을 두었다)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작가 박완서(朴婉緖)씨를 꼭 한번 만나고 싶어하고 성모 마리아에게 간절히 매달리는 그의 삶에는 숨길 수 없는 진한 애처로움이 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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