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宿敵의 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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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역사적 만남이 있었다.로버트맥나마라 전미국 국방장관과 보 구엔 지압 전월맹국방장관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베트남전쟁에서 숙적(宿敵)이었던 두사람은 첫대면이었으나 오랜 친구처럼 반가워했다.이날 맥 나마라가 지압에게 던진 첫질문은 『통킹만(灣)에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가』였다.이에 대해 지압은 『우리는 공격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64년 8월2일 월맹 어뢰정들은 남중국해 통킹만에서 미국 구축함 두척을 공격했다.존슨대통령은 반격을 명령하는 한편 의회에전쟁수행권을 요구했다.의회는 대통령에게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한을 부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로 승인 했다.미국은 월맹에 대한 북폭(北爆)을 시작하고 지상군을 파견,전쟁에 본격개입했다.맥나마라는 통킹만 결의를 지지했고,북폭도 지지했다.
그러나 맥나마라는 미국의 베트남정책이 과연 현명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그는 2차세계대전후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검토한 47권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를작성했다.이것이 유명한 『펜타곤 페이퍼스』다.미 국은 도미노이론에 따라 트루먼대통령시절부터 베트남에 개입했고 아이젠하워.케네디.존슨대통령은 베트남에서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수행해왔음이 드러났다.통킹만사건은 미국이 64년 2월부터 월맹을 상대로 벌여온 비밀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원인 제공자는 미국이었다.
맥나마라는 그후 북폭중단.평화협상을 모색함으로써 매파(派)와대립해 68년 국방장관직을 떠났으며,그후 13년간 세계은행 총재로 재직했다.
맥나마라는 지난 4월 베트남전 회고록 『베트남의 비극과 교훈』에서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엄청난 실수」였다고 썼다.그는 회고록 집필 이유를 『미래의 세대에 그 잘못을 설명할 의무 때문』이라고 밝혔다.
베트남에서 미국은 사망 5만8,000명.부상 15만3,000명이란 비싼 대가를 치렀다.수백만명이 희생되고 국토가 황폐화된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다.20년이 지난 지금 양국은 국교를 회복하고 새시대를 지향하고 있다.불행한 과거를 가 진 국가간 진정한 화해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뼈아픈 반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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