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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서 납북 유성근씨 33년만에 감격의 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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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29일 9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 유창근씨(左)가 1971년 서베를린에서 납북됐던 북측 친동생 성근씨를 만나고 있다. [금강산=연합]

"형님, 나 정말 할 말 많아요. 그만 울고 이제 진정하시라요."

9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29일 오후 북한 금강산 '김정숙휴양소'의 단체 상봉장. 1971년 4월 서베를린 여행 중에 북한에 납치된 유성근(71)씨가 남한의 형 창근(74)씨를 와락 끌어안으며 울부짖었다.

성근씨는 "형님이 어머니.아버지 모시느라 고생 많았다. 나 때문에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창근씨는 희어진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동생의 얼굴을 연방 어루만지며 "그냥 죽은 줄만 알았는데…"라고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함께 방북한 막내동생 종근(62)씨는 "암에 걸려 죽을 뻔했는데 우리 성근이 형 얼굴 보려고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다"며 통곡하다가 한동안 실신하기도 했다.

고향인 충남 연기군에서 수재로 소문났던 성근씨는 온 가족의 희망이었다. 4형제 중 둘째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고시에 합격한 뒤 노동부에서 일하던 그가 공직자로 크게 성공해 집안을 빛낼 것이란 기대였다.

하지만 서독대사관의 노무관으로 일하다 귀국을 한달 남겨둔 71년 4월 5일 가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달됐다. 부인과 두 딸(당시 여덟살, 한살)을 데리고 여행하던 성근씨 일행이 사라졌고, 열흘 뒤 북한방송에서는 "의거 입북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초 입북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실종 며칠 전 부모에게 "곧 돌아갈 것"이란 편지를 남겨 납북으로 확인됐다.

성근씨는 이날 상봉에서 "네가 북으로 간 뒤 부모님은 화병으로 80년대 초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기대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눈물을 보였다.

납북 당시 철부지였던 맏딸 경희(41)씨가 "이렇게 좋은 날 왜 우십네까"라고 나섰지만 성근씨는 더 크게 울먹였다.

성근씨는 납북 뒤 통일연구소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북한에 들어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이날 상봉에서는 87년 납북된 동진27호 선원 양용식(47)씨가 아버지 태형(77)씨를 상봉했다. 또 국군포로로 억류된 이종옥(사망)씨의 남한 동생 종득(65)씨가 형수 등을 만났다. 북한은 그동안 9회에 걸친 상봉행사에서 모두 8명의 납북자와 7명의 국군포로 가족에게 상봉을 허용했다.

이영종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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