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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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분이시겠지요?』 『네.』 『보스턴서 같이 공부하시던 유학생?』 『아닙니다.학교는 서울서 다녔고….장인 어른을 알게 돼서 결혼했습니다.』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천박스러워 아리영은입을 다물었다.
가슴이 뭉개지도록 그녀가 부러웠다.그리고 궁금했다.어떻게 생긴 어떤 성품의 여인이며,몇살이며,어떻게 우변호사와 결혼하게 됐으며,부부의 금실은 어떤지… 송두리째 알고 싶었다.
그 전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이런 세속적인 궁금증을품는 일 조차 품위에 어긋나는 일이요,자존심이 상하는 짓이었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자존심 따위는 뜨거운 물에 띄운 얼음덩이처럼 녹아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눈치를 챈 듯 우변호사는 자신의 생활 주변 이야기를 간추려 했다. …미국 공부살이는 가난하고 고달펐다.여름방학동안 보스턴바닷가 해물 레스토랑에서 회계보는 일을 맡아 아르바이트했다.손수 게를 굽는 가게 주인은 미국 해병대 장군 출신이어서 해병 법무관이었던 우변호사를 끔찍이 위해 주었다.해병의 우 애는 세계 공통의 것이다.우변호사는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애칭 「제너럴(장군)」.보스턴 태생이라는 그가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있는 말이 있었다.
영국 총리 처칠이 1943년 하버드대학에서 가진 연설의 한 대목이다.
『만약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불가능은 없다….』 어느 날 주인의 「한국 친구」가 찾아왔다.서울에 있는 원양어업회사의 사장이었다. 그가 우변호사를 기어이 사위로 삼은 것이다.
장모는 서울 명문 집안의 딸이다.예의범절이 반듯하고 살림솜씨도 야무진 대갓댁 마님이지만 아내는 어머니와 같지 않았다.쾌활했으나 매사에 데면데면하여 식탁은 인스턴트 식품으로 가득했다.
지금은 보스턴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아들이 그 곳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주말이면 우변호사가 보스턴에 가거나 아내가 뉴욕에 오거나 하여 지내고 있지만 요즘은 우변호사의 해외 출장이잦아 그것도 뜸하다….
우변호사의 얘기를 들으며 어머니와 함께 들른 보스턴 바닷가 식당 생각이 났다.그 무렵 그와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이렇게 어긋나 온 만남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 레스토랑은 아직 있어요?』 『물론입니다.제너럴도 아직 건강하고요….보스턴에 언제 들르시면 모시고 가겠습니다.』 한길에서 운전기사가 소리쳐 불렀다.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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