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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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여사는 우변호사의 아버지인 첫 남편과 일찍이 사별(死別)했다.그리고 김사장의 아버지와 재혼,몇 해 후에 이혼했다….큰아들 우변호사를 통해 추려진 서여사의 약력이다.
서여사에게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늘 명랑하며 너그럽고 긍정적인 성품이 전혀 그늘을 느끼게 하지 않았고 그녀 자신도 과거 일을 입에 올린 적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님께서도 우변호사님처럼 잘 생긴 분이셨나 봐요.』 치켜세우는 말만은 아니었다.
서여사와 같이 활달하고 명민한 여성을 사로잡은 남성이 궁금했다. 우변호사는 씩 웃었다.오른쪽 입가에만 띄우는 떫은듯한 그웃음이 아리영의 마음을 낚았다.지성과 야성을 함께 지닌 남자의웃음이다.
『저야 못난 오리새끼지만 아버지는 멋진 사나이였다고 들었습니다.해병대 군의관이셨지요.…저는 못뵈었습니다.유복자(遺腹子)였으니까요.』 유복자.어머니 배 안에 있을 때 이미 아버지를 여읜 아이.
측은함이 아리영으로 하여금 더욱 우변호사한테 마음 기울이게 했다.미국의 대규모 로 펌의 파트너 변호사라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연봉(年俸)도 상당할 것이다.
어머니 서여사가 귀띔해준 그의 이력은 현기증을 일으키게 할만큼이나 혁혁했다.
S대 법대 4학년 재학중 사법시험에 합격,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사법연수원을 거쳐 해병대 법무관을 지원,3년의 군생활을 마친 다음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2년 근무.미국에 가 하버드대 로 스쿨에 입학,석사과정을 끝내고 뉴욕주 변호 사 시험에 합격.곧이어 뉴욕의 로 펌에 채용되었다.지금은 이 회사의 주주(株主)변호사,즉 파트너로 있다.미국 로 펌의 유능 변호사 중에서도 파트너는 극소수다.
그런 엘리트에게 측은함을 느끼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가 「문제아동」이었다는 것도 걸맞지 않은 일이었다.이 남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어렸을 때 얘기 해주세요.공부 잘하셨다면서요.』 『공부는 고교 때부터 정신차려서 하기 시작했지요.그 전엔 깡그리 땡땡이치고 놀면서 새 아버지를 골탕 먹일 궁리만 하고 지냈어요.』 『왜요?』 『…싫었어요.』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쓰라린 사정이 있을 것만 같아 묻기가 조심스러웠다.
『오늘은 어느 곳에 땡깡을 놓고 내일은 어느 곳에 신세를 지나….』 우변호사는 또 노래를 불렀다.
『해병대 근성가(根性歌)의 2절입니다.병영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옛날 일이 생각나 가슴이 메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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