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벌어지는 韓日관계-일본입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사카(大阪)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를 닷새 앞둔 일본정부에 한-일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일 정부는 일본의 식민지정책을 미화하는 망언을 한 에토 다카미(江藤隆美)총무청장관 때문에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위해 11,12일 이틀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을 한국에 파견시킬예정이었다.그러나 한국정부가 에토에 대해 엄중 주의 정도로 끝내려는 일 정부에 강력히 반발,고노의 방한을 사실상 거부함에 따라 곤혹스런 입장에 빠져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총리등 일 연립3여당 당수들은 한국정부의 고노 방한 거부소식을 듣고 10일밤 부랴부랴 긴급회담을 갖고 고노외상의 방한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오사카 APEC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는 무라야마정권은 돌발적인 이번 사태로 외교적인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됐다.한국정부측에서 에토를 해임시키지 않을 경우 18일로 예정된 한-일정상회담에도 큰 영향이 미칠 것이란 뜻을 계속 전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위원장인 무라야마총리로서는 한국측 요구대로 에토를 해임하는 쪽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지만 소속정당 장관을 감싸도는 연립 파트너 자민당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자민당 실력자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간사장이 에토 해임에 적극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총재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 통산상도 이번 사태가 APEC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하시모토 통산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각료들은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우리 는 중요한 국제 회의를 앞두고 있으므로 각료들은 총리의 지도하에 단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에토에 대해 엄중 주의하고 고노외상을 한국에 보내 사태를 수습하려는 일 정부의 움직임을 간파한 한국정부는 외무부와 대사관의 긴밀한 협의하에 강경한 조치를 요구해왔다.
김태지(金太智)주일대사는 이날 하야시 사다유키(林貞行)일 외무성 사무차관을 만나 『일본측이 현직각료의 문제발언을 취소,진사하는 것만으로는 사태수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고노외상의 방한도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을 경우 무의미할 것』이라며 방한거부를 시사했다.
일 정부는 고노외상의 방한취소에도 불구하고 에토를 해임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아직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정부가 계속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한 해임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을것이란게 일 정계소식통들의 분석이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번 사태로 인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APEC에 참가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일 정부가 태도를 굽히지 않을 경우 18일로 예정된 한-일정상회담은 보이콧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이렇게 될 경우 무라야마총리는 외교적으로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없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측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