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FTA 결함 많다 비준안 의회에 내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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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버락 오바마(사진) 상원의원이 23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의회에 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오바마는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한·미 FTA를 “매우 결함 있는(badly flawed)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는 서한에서 “많은 의원들처럼 나는 한·미 FTA를 반대한다”며 “합의문 내용이 미국 공산품과 농산물의 효과적이고 구속력 있는 (한국) 시장 접근을 보장하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동차 관련 조항이 불공정할 정도로 한국에 유리하게 돼 있다”는 말도 했다.

그는 “협상한 그대로의 협정을 비준하는 건 한국 수출업체엔 미국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제공하는 반면 (한국에 대한) 우리의 상응하는 시장 접근 기회는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부는 이 협정을 둘러싼 불필요하고, 잠재적으로 소모적인 대치를 촉발하지 말고 협정을 보류함으로써 의회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무역 문제와 관련해 초당적인 협력 체제를 복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의 서한은 이날 부시 대통령이 ‘세계무역주간’ 기념 연설을 통해 미국이 한국·콜롬비아·파나마와 체결한 FTA를 의회가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고 말한 직후 공개됐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가 노리는 것은 FTA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미국 노동자들의 표”라며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백인 노동자층에 약하다는 문제가 여러 번 드러난 만큼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반FTA 입장을 자꾸 밝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FTA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온 오바마가 반대 입장을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 2월 “한·미 간 협정 기준이 우리의 요구 수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한 그의 태도가 한층 강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미 의회에서 한·미 FTA가 비준받을 가능성은 더욱 작아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가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데다 당내의 다른 지도자들도 한·미 FTA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21일 오바마와 비슷한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냈다.

부시 행정부엔 시간도 없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한·미 FTA보다 먼저 다뤄야 하는 미·콜롬비아 FTA 비준 동의안 심의도 무기한 보류했다. 11월 4일엔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만큼 선거운동 기간을 고려하면 비준은 늦어도 9월 초엔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엔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한·미 FTA 비준 문제는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의회에서 다룰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한·미 FTA 비준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민주당이 11월 의회 선거에서 다시 상·하 양원을 장악하면 FTA 비준이 이뤄진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17대 국회가 끝나는 29일까지 FTA 비준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 한나라당은 24일 FTA 비준 동의안 처리를 위해 29일까지를 회기로 하는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 의회의 소극적 태도를 들어 동의안의 국회 상정을 반대해 온 통합민주당은 오바마의 서한까지 나옴으로써 의사 일정을 잡는 데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윤창희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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