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LA 목수에서 ‘미국의 영웅’으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3호 03면

실베스터 스탤론도 ‘록키 발보아’와 ‘람보 4’를 찍었다. 브루스 윌리스도 ‘다이하드 4’를 찍었다. 그렇다면 ‘인디아나 존스 4’도 안 될 게 없는 것 아닌가?
해리슨 포드는 1994년부터 스티븐 스필버그를 졸라 ‘인디아나 존스’ 속편을 만들자고 주장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영화 인생을 통틀어 세 차례나 두 편 이상 이어지는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았다.

‘인디아나 존스 4’로 돌아온 해리슨 포드

첫 번째가 ‘스타워즈’ 후반 3부작의 핸 솔로 역이고, 두 번째는 인디아나 존스다. 세 번째가 톰 클랜시의 소설을 영화화한 ‘패트리어트 게임’과 ‘긴급 명령’에 나온 잭 라이언 역이다.해리슨 포드는 인디아나 존스 역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한 인터뷰에서 ‘핸 솔로 역을 다시 맡는다면?’이란 질문을 받았을 때 “절대로 안 한다”고 말했지만, ‘존스 역이라면?’이란 질문에는 “당장이라도(in a New York Minute)”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그의 배우 역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42년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난 해리슨 포드는 정말이지 할리우드 톱스타가 될 거라고는 상상이 안 되던 소년이었다. 고교 성적은 전 과목 C 이하. 스포츠 특기도 없었다. 1964년 성우 일을 해 보겠다고 LA로 왔다. 어쩌다 보니 영화도 몇 편 찍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없어 취미였던 목공 일을 부업으로 했다. 솜씨가 괜찮았는지 제법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어느 날 조지 루커스의 옷장을 만들어 주다가 영화 ‘아메리칸 그래피티’에 캐스팅됐다. 루커스와의 첫 인연이다.
하지만 루커스에게 아직 그는 ‘시간 많은 배우 지망생 목수’ 이상은 아니었다. ‘스타워즈’ 구상 중에 해리슨 포드를 불러다 오디션 배우들에게 대사를 읽어 주는 일을 시킨 걸 보면 말이다.

그러던 루커스에게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가 “차라리 저 친구를 쓰자”고 권했고, 제작비 절감에 골몰하던 루커스는 그에게 덜컥 핸 솔로 역을 맡겼다. 포드가 ‘지옥의 묵시록’에 단역으로 나온 것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사무실을 수리해 준 인연 때문이었다니,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또 있을까.

핸 솔로 역으로 만 35세에 늦깎이 스타가 됐지만 해리슨 포드가 이 역할에 느낀 애정은 ‘스타워즈’ 시리즈 종결과 함께 끝났다. 그는 에피소드 6인 ‘제다이의 귀환’ 때 루커스에게 “차라리 여기서 핸 솔로를 죽이는 게 어떠냐”고 귄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디아나 존스는 달랐다. 이 역할은 그에게 ‘살아 있는 영웅’의 자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특수효과의 힘을 많이 빌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스턴트를 스스로 해냈고, 자신과 존스 박사를 일치시켰다. 심지어 배우 해리슨 포드의 턱에 있는 상처까지 시리즈 3편에서 젊은 날의 존스(리버 피닉스 분) 박사가 채찍을 처음 쓰던 날 생긴 것으로 처리됐을 정도다.

생각해 보면 애정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인디아나 존스는 일대일 주먹 대결에선 절대 밀리지 않는 터프가이지만 지성이 철철 넘치는 교수님이다. 고지식하지만 현명하고, 여자와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착한 사나이다.

이 캐릭터가 진정한 미국인의 영웅이 되기 위해 부족한 것이 있다면 단 하나,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포드는 다시 ‘모스키토 코스트’ ‘실종(Frantic)’ 그리고 두 차례 잭 라이언 역할에서 성실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 줬다. 아마도 포드가 꿈꾸던 캐릭터의 완성편은 ‘에어 포스 원’에서의 미국 대통령 역할이 아닌가 싶다. 실생활에서도 두 차례 이혼은 했지만 네 자녀에게는 헌신적인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모든 걸 다 갖출 수는 없는지 상복은 따르질 않았다. 아카데미상에는 85년작 ‘위트니스’로 단 한번, 골든 글로브에서는 네 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못 했다. 그래도 그에겐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기록이 있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들의 전 세계 흥행수입을 합하면 56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역대 최고액이다.

과연 ‘인디아나 존스 5’에서도 포드가 노익장을 뽐낼 수 있을까. 포드는 호기롭게 “여러분이 원한다면”이라고 말했지만 불행히도 ‘인디아나 존스 4’에서 드러난 목 주름으로 봐선 더 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극중 존스 박사는 시리즈 3편에서 성배에 담긴 물을 먹고 불로장생의 힘을 얻었지만 그게 현실의 포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진 못한 것 같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