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이야기를 나눌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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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이야기를 나눌 시간' 전문

친구가 길에서
말의 발걸음 서서히 늦추며
다정히 내 이름을 부를 때
아직 갈지 못한 둔덕을 바라보며
웬 일인가? 소리쳐 묻지 않는다네
우리에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으니까
부드러운 땅의 가슴에
괭이자루를 세워두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돌담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온다네



우리에겐 좀처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전적으로 부족한지도 모른다. 친구가 없으니 이야기는 점점 메말라가고 온정이나 의리 같은 말들도 사라져 간다. 피곤한 하루해가 저물고 불 켜진 포장마차 앞을 구부정 지나갈 때 문득 누군가 큰 목소리로 어이, 하며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 저녁은 얼마나 따뜻한 저녁이 되겠는가. 그 저녁 포장마차의 '꼼장어' 맛은 얼마나 일품이겠는가. 딩동, 초인종을 누르고 아파트 문 앞에 섰을 때 식구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때 우리의 의기소침은 얼마나 따뜻하게 녹아내리겠는가. 길 위에서 사무실에서 지하철에서 꽃 핀 나무 앞에서 다정하게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자.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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