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텅 빈 마음 어루만져 주는 ‘텅 빈 그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우리가 잃은 것은 우리가 얻은 것보다 아름답다.
강일구 글·그림,
한스컨텐츠,
136쪽, 1만원

그는 ‘4차원’이다. 강일구 작가의 그림에선 할아버지가 손자를 재울 때 팔베개는 물론 수염 이불도 덮어준다. 애완견은 몸 져 누운 주인의 이마에 물수건 대신 혀를 쑥 내밀어 얹고 곁을 지켜준다. 눈에서 쏟아진 눈물은 사람 크기로 자라 나를 보듬어 안아 준다. 단순한 선으로 쓱쓱 그려 어딘가 헐렁해 보이는 그의 그림은 함축적이다. 그림 옆 촌철살인의 한 문장이 여운을 증폭시킨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의 꿈을 위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지” “내 눈물이 나를 끌어안는다. 때로는 슬픔이 힘이 된다”는 식이다.

강일구 작가가 그림책을 냈다. 눈밝은 독자라면 어딘가 낯익은 그림이다 싶을 게다. 그는 중앙일보 일러스트레이터다. 책은 가족·눈물·배려·성찰·소통·평화라는 따슨 주제로 10여 년간 그린 그림을 골라 묶었다.

몇 개의 선으로 이뤄진 이 그림을 그리는 데는 짧게는 몇 분이면 족하다. 그러나 뭘 어떻게 그릴지 생각해 내는 데 한 달씩도 걸린다. 어른의 실용논리와 처세술로 가득한 지극히 상식적인 이 세계에서 4차원의 그림을 그리는 건 그렇게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책장을 넘기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빈 곳 많은 그의 그림이 마음 속 텅 빈 곳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행복해진다는 주위의 말에 용기 백배해 그는 스스로 ‘힐링 아티스트’라 칭한다.

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