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열린마당

‘석유 위기’ 최악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석유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5년간 고유가는 지속됐지만 석유 위기는 없었다. 위기는 급격한 가격과 수급 여건 변동이 동반돼야 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중대한 수급 차질은 없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석유 위기’란 말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국제 석유 시장 움직임은 ‘위기’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평균 70달러 수준이었던 유가는 지금 130달러를 넘었다. 올해 들어서만 70% 이상 올랐다. 유가 상승 충격은 최악의 위기라던 1973년의 경우에 근접하고 있다. 여기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거부, 일부 산유국의 정정 불안 등 국제 정세에 따라 세계 원유 생산 여유량도 적정 수준의 절반 이하인 200만 배럴로 떨어졌다. 시장 급변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이것이 석유 위기 도래의 첫째 증거다.

둘째 증거는 가격 결정에서 ‘시장의 힘’이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원유 및 천연가스 재고는 예상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OECD 국가의 석유 수요량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지난달 이후 유가 상승 폭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비(非)OECD국가의 석유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석유 시장 주도권이 신생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신생 시장으로 넘어간 주도권 탓에 시장 예측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마지막 증거는 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 경기가 심각하게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석유 위기가 초래한 후유증이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지난 5년간 누적된 고유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국제 금융 위기와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악재가 산재한 지금이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스태그플레이션, 달러화 가치 하락, 자원 민족주의, 유가 추가 상승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에너지-경제 구조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모든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무리한 에너지 투자 확대, 불확실한 기술 혁신, 막연한 해외 투자에만 기대기에는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너무나 시급한 문제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