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재기한 '팔기회' "쓰러진 기업 다시 도와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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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인생에서 누구나 실패를 경험할 수 있죠. 문제는 얼마나 빨리 재기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도산의 실패를 경험한 기업인들의 모임인 ‘팔기회(八起會)’를 재창립하는 남재우(67·사진) 명예회장의 ‘칠전팔기론’이다. 그는 23일 서울 종로구민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팔기회의 활동 재개를 공식 선언한다. 남 명예회장은 1992년 도산한 기업인들의 자문과 재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팔기회를 만들었다. 이름은 칠전팔기(七顚八起)에서 따왔다. 98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속속 부도를 내면서 한때는 회원이 10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다 2002년부터 자금부족으로 사실상 공식 활동을 중단해왔다. 그에겐 ‘팔기회’의 활동 재개도 또 한번의 재기인 셈이다.

남 명예회장은 활동 재개 이유를 “최근에 다시 도산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실업급여를 주는 곳은 있어도 재기를 도와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라며 “팔기회를 통해 재기한 분들이 재정적 뒷받침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시총회를 마치는 대로 법률·회계 분야의 자문역도 구하고 조직을 재정비하겠다”고 덧붙였다. 3000여 건의 도산 사례를 분석해 사례집도 만들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올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란다. 남 명예회장은 “팔기회의 재정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예전에는 모든 활동을 무료로 했지만, 이번엔 회비나 최소한의 자문료를 받는 방법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의로 부도를 낸 기업인이나 재산을 빼돌린 도산 기업주는 팔기회 활동이나 참가자에서 배제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남 명예회장이 도산한 기업인들의 재기에 발벗고 나선 것은 본인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83년 양복지 업체인 라전모방을 인수한 뒤 이듬해 5월 부도를 냈다. 직원들이 똘똘 뭉쳐 회생기회를 잡았지만 같은 해 9월 수해로 공장이 침수돼 또다시 좌절을 맛봤다. 이때도 수해복구 지원금을 받아 재기에 성공했으나 97년 다시 수재와 화재가 겹치며 쓴맛을 봐야 했다. 그는 이후엔 회사 경영을 접고 팔기회 활동에 앞장서 왔다. 남 명예회장은 “부도가 나면 가정이 쓰러지고 인생이 끝난 것 같아 경영자가 극한 생각을 하곤 한다”며 “앞으로 팔기회가 도산 기업인의 가정을 지키고 다시 일으켜 세울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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