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 단속·추방 만으론 근절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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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외국인 인권단체인 ‘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4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잇따라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했다. 한국인 동료의 폭행으로 사경을 헤매는 사례, 쇠파이프·삽으로 폭행당한 사례, 5년간 노예처럼 일하고도 월급을 못 받고 폭행·학대를 당한 사례 등이 소개됐다. 조호진 소장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유린이 차별과 냉대 수준을 넘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문제 대부분은 20만 명을 넘어선 불법 체류자와 연관된다. 이들은 고용주나 주변 한국인에게 약점이 잡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주노동자 인권센터 최현모 사무처장은 한국 내 불법 체류자 증가를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기본적 정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단기 목적으로 한국에 왔더라도, 한국 사회에 나름대로 적응하고 나면 계속 머물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는 의욕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장기 체류자를 선호하는 한국 사업장 고용주가 불법 체류자 양성에 일조한다는 의견도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우삼열 사무처장은 “오랜 체류로 한국 문화에도 이미 적응했고, 한국말도 잘 알아듣는 근로자를 내쫓고 새로운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은 고용주로서는 엄청난 비용투자”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단속과 강제 추방만으로는 불법 체류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전북대 김태명(법학) 교수는 “고용허가제 이전부터 불법 체류한 이들은 내보내고, 고용허가제 이후 합법적으로 들어온 이들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무작정 추방이 아니라 귀국 후 합법적으로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승녕·이충형·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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