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드택시 결제 안 되면 6월부터 요금 안 내도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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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시민 신모씨는 지난달 15일 택시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그가 탄 택시는 요금을 교통카드 또는 신용카드로 낼 수 있는 이른바 ‘카드 택시’였다. 택시 안에는 신용카드 단말기와 교통카드 단말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씨가 카드로 요금을 내려 하자 택시기사는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신씨는 서울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버젓이 단말기는 설치해 놓고 왜 카드를 받지 않느냐”고 올렸다.

서울시가 지난해 도입한 카드 택시가 1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택시 기사가 카드 결제를 거부하거나 카드 결제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1일 ‘카드택시 요금 결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39억 들인 사업 유명무실=서울시는 지난해 3월 22일 택시 한 대당 15만원의 단말기 설치 비용을 예산으로 지원하며 ‘카드 택시’ 운용을 시작했다. 자가용 통행을 줄이고 택시 이용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였다. 지금까지 서울 시내 전체 택시(7만2500대) 중 36.5%인 2만6544대가 카드단말기를 설치해 단말기 설치 비용으로 39억원이 나갔다.

그러나 택시 요금의 카드 이용은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체 카드 택시의 하루 요금 중 카드로 결제하는 비율은 8.6%에 그치고 있다. 결제 건수도 택시 한 대당 하루 0.7건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일부 택시기사들의 카드 거부다. 카드 단말기를 아예 끈 채로 다니는 택시도 있다. 카드결제 시 요금 승인에 20초가 걸리고, 고장이 잦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 서소문에 직장이 있는 이모(47)씨는 “카드 승인을 받는 도중에 뒤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바람에 카드 결제를 포기하고 현금을 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씨는 “택시기사가 단말기를 한참 건드리다 ‘고장이 났는지 안 된다’고 할 때는 짜증이 난다”고 전했다.

카드 결제 요금 중 2.4%를 차지하는 카드수수료도 택시기사들이 카드를 기피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개인택시 기사 김모(56)씨는 “일부 법인택시 회사들은 카드 수수료를 기사들에게 부담토록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제 승인 속도 단축=시민들의 불만에 따라 서울시가 대책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카드 결제 시스템을 개선해 카드 승인 속도를 현재의 20초에서 10초로 단축시켰다”고 밝혔다. 또 택시에 타서 먼저 카드 승인을 받아놓고 목적지에 도착해 확인 버튼을 누르면 5초 안에 영수증이 나오는 ‘선승인 제도’도 도입했다. 카드 결제 요금이 5000원 미만인 경우에는 4월부터 서울시가 택시기사나 법인택시 대신에 카드 수수료를 내주고 있다. 카드결제기가 고장나서 카드로 요금을 못 낼 경우 승객 대신 카드결제시스템 책임기관인 KSCC가 택시회사나 개인택시 사업자에게 대신 지급하는 ‘요금 대불제’도 6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카드 택시에서 사용을 못하던 KB카드와 시티카드도 7월부터 사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택시 승객이 카드 승인 과정을 알 수 있도록 카드단말기에 음성 안내 시스템을 도입한다. 택시기사가 단말기를 작동하면 “승인 요청 중입니다” “승인이 완료됐습니다” “정상 처리됐습니다” 등의 음성이 자동적으로 나오게 한다.

택시 사업자에는 채찍과 당근도 같이 제시했다. 고의로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택시에 대해 과징금(법인 60만원, 개인 30만원)을 부과한다. 3회 이상 거부하면 카드결제기를 회수한다. 이와 함께 분기별로 카드 결제 실적을 평가해 우수 법인택시에는 최고 4000만원의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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