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담화에 담겨야 할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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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치인의 언어가 빛이 나는 건 국민에게 감동을 줄 때다. 대통령의 언어가 특히 그렇다. 대공황 시절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할 건 두려움 자체”라는 라디오 호소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의 노변정담이 불러일으킨 애국심으로 대규모 은행 인출 사태가 진정됐다. 대통령에겐 국민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대통령 개인이 마력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국민 다수가 그가 좋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선거 때처럼 진솔하기만 하면 경청하고 감동받을 준비가 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 한 달 가까운 쇠고기 파동에 대해 사과하고 한·미 FTA 비준을 촉구하는 내용일 것이라고 한다. 취임 100일도 안 돼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전개가 안타깝다. 혹여 이 대통령이 억울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건 더욱 안 될 말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국민에게 죄송해하고 매우 분명한 단어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사죄해야 하는가. 쇠고기 파동으로만 보자면 농림수산식품부 대미 협상 라인의 명백한 오류와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장관의 무능을 사죄해야 한다. 대통령과 총리가 나서 재협상에 가까운 불끄기를 해야 했던 심각한 오류와 무능이다. 청와대는 담화의 주제가 FTA촉구가 될 것이기에 그 쪽에 초점이 맞춰지길 바라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얘기라도 국민의 눈치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

시중엔 이명박 정부가 ‘보수 아마추어리즘’이란 비판이 무성하다. 말만 근사하게 하고,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노무현 정부의 아마추어리즘과 비슷해 보인다는 지적들이다. 이런 상태에서 자기는 희생함이 없이 국민에게만 이해해 달라고 촉구하는 식의 대국민 담화라면 곤란하다. 핵심은 인사조치다. 사과와 함께 그에 따른 문책과 쇄신 인사를 병행해야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담화엔 또 주요 정치인, 정치세력과 신뢰를 쌓아 정치권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야 할 것이다. 야당과 박근혜 의원뿐 아니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과도 만나 협조를 구하는 일에 인색해선 안 되겠다. 대통령이 되면 후보 시절 가졌던 당파적 감정과 가치관은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