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땅 흔들 … 매일 공포 속에 잠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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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생부는 피해지역을 돌며 방역과 소독작업을 벌이면서 이미 감염된 환자들을 격리수용하고 위생검사를 하고 있다. [몐주(쓰촨) AP=연합뉴스]

피해 현장이 이 정도로 처참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핵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피해 지역은 남한 전체 면적보다 넓었다.

12일 오후 중앙일보 베이징(北京) 지국 9층 사무실에서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두개골 안에서 뇌수가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주 묘하고 불쾌했다. <관계기사 18, 30면>

당시만 하더라도 지진인 줄 몰랐다. 약 20분이 지나서야 쓰촨(四川)성 원촨(汶川)에서 규모 7.8(이후 8.0으로 수정)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다. 베이징에서도 규모 3.9의 여진이 관측됐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현기증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진앙지와 가장 가까운 공항이 있는 쓰촨성 청두(成都)로 가는 항공편을 가까스로 예약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13일 오전 5시30분쯤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은 가족을 찾아 청두로 들어가려는 중국인들로 새벽부터 붐볐다. 간신히 표를 구했지만 청두 공항이 전날부터 폐쇄되면서 오후가 되도록 항공기가 제대로 뜨지 못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더 빠른 항공편을 물색하느라 공항 검색대를 대여섯 번 드나들고, 총알 택시로 공항 2터미널과 3터미널을 두 번씩이나 왕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충칭(重慶)으로 먼저 날아간 뒤 폭우 속에 3시간 택시를 달려 청두로 들어갈 수 있었다.

14일 오전 청두 북서쪽 50㎞에 있는 두장옌(都江堰)시에 들어서자 지진의 참상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사회부 기자 시절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참사 현장을 모두 취재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 지진은 “수천, 수만 개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동시다발적으로 붕괴된 최악의 참사”라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환자와 의료진 등 200여 명이 매몰된 두장옌 중의(中醫)병원에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새끼를 잃은 야수처럼 절규하고 있었다. 피해 현장에서 이재민을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규모 5~6의 여진은 수시로 일어났다. 여진이 느껴지는 순간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저절로 잡게 됐다. 입에서는 “아!” 또는 “으!”하는 뜻 모를 외마디 비명이 저절로 새나왔다.

진앙지에 가족을 둔 이들이 가족을 찾아 사지로 뛰어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란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진의 진앙지 인근 판다 보호구역을 여행하던 한국 유학생 5명의 생환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내내 안타까웠다. 이들의 생존을 확인하고 속히 호송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던 청두 총영사관 관계자들의 모습도 곁에서 지켜봤다.

19일 댐 붕괴 위험 현장 확인을 위해 두장옌을 다시 찾았다. 시내에 진입하기 전부터 역한 냄새 때문에 숨이 탁 막혔다. 동행한 렌터카 운전자는 “지진으로 매몰된 시신들이 폭우와 고온 때문에 금방 부패해 도시 전역에 악취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파충류처럼 피부로 호흡이 가능하다면, 코로 숨을 쉬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혼자 넋두리를 해댔다.

개인적으로 이번 지진 현장을 뛰어다니다 피부병을 얻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수천 회 반복된 여진의 와중에 매일 밤 17층 호텔방에서 잠을 청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청두를 떠나며>

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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