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고교 선택제 앞둔 서울 혜원여고의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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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혜원여고에 축포가 터졌다. 기숙사 건립을 위해 첫 삽을 뜬 것이다. 서울 지역 일반계 고교 207곳 중 처음으로 짓는 기숙사다. 서울에는 과학고나 체육고, 특수학교에만 기숙사가 일부 있다.

이 학교 원미선(2학년)양은 “학교가 외진 데 있어 먼 거리에서 다니는 친구도 많다”며 “통학 시간을 줄이고 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니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중2가 고교에 입학하는 2010학년도부터 시행되는 고교선택제를 앞두고 혜원여고가 살아남기 변신에 나섰다. 이 학교가 기숙사를 짓기로 한 것은 ‘학생들에게 선택받아야 살아남는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고교선택제는 서울 지역 중학생들이 지역에 상관없이 원하는 학교를 일정 비율 골라 갈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혜원여고 김은래 교사는 “멀리서도 학생들이 찾아올 수 있는 학교를 만들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교사들의 고민이 있었다”며 “기숙사 건립과 함께 자율학습실 운영과 ‘쉴토’ 논술반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교 살리기’ 나선 교사들=혜원여고는 1980년대만 해도 서울대에 한 해 19명을 보낸 적도 있는 명문여고였다. 특목고로 우수 학생들이 몰리고 지역 발전이 정체되다 보니 예전의 명성을 잃어 갔다. 이 학교의 재학생은 1400명. 그중 350여 명이 학비 지원을 받아야 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이다. 이 학교 연건희 교사는 “우리 학교의 저소득층 학생들은 방 두 개짜리 다세대 주택에 한 가족 5~6명이 사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중에도 성적이 우수한 아이가 많은데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방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학습 공간을 제공해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자”는 교사들의 소망이 기숙사 건립에 나서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올 2월 14일 교사 80여 명은 충남 대천의 한 연수원에 모여 1박2일간 토론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자율형사립고를 포함한 교육 경쟁력 강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때였다. 민해 교감은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다”며 “기숙사를 짓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학교 측은 ㈜부영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교육시설을 무료로 지어 준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학교 발전을 위해 기숙사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 것이다. ㈜부영 이동화 홍보부 과장은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외 100여 곳에 기숙사·도서관을 지어 기부했지만 서울 지역 고교에는 지원한 적이 없었다”며 “서울에서도 교육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기숙사는 4층 건물에 4인1실로 140명을 수용할 수 있다. 9월 중순이면 완공된다. 이자흠 교장은 “성적 우수자뿐만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우선 입소시키겠다”고 밝혔다.

◇학력으로 승부한다=민 교감은 “11월 수능시험을 앞둔 고3들이 기숙사에서 집중적으로 마무리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겠다”며 “기숙사비도 실비만 받고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동문과 지역사회가 후원금을 대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학생 실력을 높이기 위해 올 초 400석 규모의 독서실형 자율학습실도 만들었다. 전자카드로 출결 사항을 자동 체크해 학부모에게 문자 메시지로 알려준다. 오혜근(2학년)양은 “원하는 학생들이 자습실을 이용해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쉴토 논술반 수업’을 위해 매주 둘째, 넷째 토요일도 학교에 나와 맞춤형 논술 지도를 하고 있다. 대학생 선배들도 후배를 돕는다. 1, 2학년생 30명을 대상으로 방과 후에 그룹지도를 한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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