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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해진 영재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영재교육 발전계획에 따르면 영재교육 대상자가 점차 확대되고 선발시기도 앞당길 예정(수학·과학 초3, 예체능 초1 부터)이다. 현재 서울시 내 16개인 영재학급은 내년에 137개로 늘어난다. 경기도 교육청도 전일제·사이버 영재교육원을 운영하는 등 그 영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영재교육 현장을 살펴봤다.

|경기도 교육청 전일제 영재교육원

“다양한 실험 장면 동영상 보며 수업”
  수원의 경기도 과학교육원에 들어서자 서금자 연구관이 기자를 반긴다. 그는 전일제 수업의 필요성에 대해 “프로젝트 수업의 연속성을 위한 것”이라며 “방과후 수업 형태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올해는 모든 영재교육기관 선발이 끝난 후 모집을 시작해 경쟁률이 다소 낮았지만, 2009학년는 시기를 앞당겨 모집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추후 예능·인문 영역으로 과목도 확대할 계획이다.
  과학실에서는 박해천 교사(늘푸른고)가 조금 전 실험했던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아이들과 실험내용을 짚어보고 있었다. 드라이아이스의 성질을 이용해 저마다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박교사는 “한 가지 실험을 제시해도 아이들이 호기심이 많아 여러 가지 기구를 가져다 실험을 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이곳에선 실험기구와 재료들을 마음껏 쓸 수 있다.
  한쪽에서 갑자기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한 아이가 물벼락을 맞고 서 있었다. 물이 담긴 플라스크에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뚜껑을 닫아, 내부에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면서 뚜껑이 날아가고 물이 튄 것이다. 물을 뒤집어 쓴 김태훈(신릉중1)군은 그래도 즐거운 표정이다. 김군은 “드라이아이스가 책상에서 잘 미끄러지는 성질을 이용해 탁구 같은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한쪽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최혁진(동수원중1)군이 드라이아이스를 태워보고 있었다. 아예 삼발이와 알코올램프까지 가져온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오도록 지도하고 있다. 김명환 연구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실험에 몰두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강동교육청 영재교육원 미술 수업

“선발부터 수업까지 창의성·개성 중시”
  서울 풍납중학교에서는 강동교육청 영재교육원의 미술 수업이 한창이었다. 스무명의 아이들 모두 제법 진지한 표정이다. 드로잉에 대한 이론 수업 후 콩테, 목탄, 붓펜 등 그리기 재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아이들도 각자에게 지급된 그리기 재료를 들고 자세히 살펴본다.
  이 날은 학생들이 돌아가며 모델이 되었다. “일단 처음엔 자기가 잘 그리는 방식대로 그리세요. 연필 쥐는 법도 안 가르쳐 줄 겁니다.” 김정아 교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한 장의 종이를 채워나갔다. 얼핏 봐도 스무 개 그림의 개성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번에는 관절에 주목해 그려보세요. 많이 보고 열심히 관찰하는 게 중요해요.” 이후 수업은 자신의 그림을 보지 않으면서 연필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그리는 ‘하이드드로잉’과 각 그리기 재료를 이용한 드로잉 실습으로 이어졌다.
  그 시각 바로 위층에서는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장시간 수업 받는 아이들을 위해 돌아가며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학부모 최미아씨는 “경기도에서 최근 서울로 이사 왔는데, 미술·정보처리 등 다양한 영재교육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김상미 씨는 “학원에 가면 입시 목표에 따라 ‘OO중학교 풍’의 기법을 가르친다”며 “영재원은 선발과정부터 수업까지 기술적인 측면보다 창의성·개성을 중시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합격생 중 미술 학원에 다녀본 학생의 수는 절반인 10명이었다.
  김 교사는 “매년 예중 편입에 성공하는 아이가 한 명씩 나올 정도로 평균 실력이 우수하다”며 “그러나 순수하게 미술이 좋아서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수업을 받으면서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마천초등학교 수학 영재학급

“학생·학부모의 요구 적극 반영해 수업”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교실 칠판에는 ‘아름다운 무늬를 꾸며요’라는 제목이 써있었다. 옮기기·뒤집기·돌리기 등 일정한 규칙을 다양하게 반복해 도형을 만드는 활동이었다. 이현진 교사는 “여러분이 만든 모양 중 서로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며 각자 만든 도형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도록 했다.
  인근 19개 학교 학생들 가운데 20명을 선발한 마천초 영재학급은 지난해 영재교육 우수기관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 수료생이 제3 회 서울시 영재교육창의적산출물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교사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순수하게 학생들이 만든 작품이었기에 더욱 기특했다”고 이 교사는 말했다.
  학부모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김종숙씨는 “사실 영재교육하면 대학부설 영재교육원만 떠올리는데, 그에 비해 여기는 만들어진 영재가 아닌, 다듬어지지 않아 잠재력이 큰 아이들이 모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주씨도 “아이를 보내본 한 어머니가 ‘사교육을 받는 것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적극 추천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학원처럼 어려운 문제 풀이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교구를 이용해 사고력·창의력 확장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대된다는 반응이었다.
  이 교사는 “학생·학부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요구를 적극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 영재학급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상위 영재교육원 합격률도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다음주에 배울 ‘파인애플 속 피보나치 수열 찾기’에 대한 간단한 예고를 한 뒤 이 날 수업은 끝났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교실에 마련된 조노돔·하노이탑·소마큐브·블로커스 등 교구들을 가져다 친구들과 노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프리미엄 최은혜기자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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