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 View] 쓰촨 대지진은 韓·中·日 관계 개선의 촉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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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35면

동아시아의 3대 경제 강국인 한국·중국·일본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순간 쓰촨 대지진이 발생했다. 중국은 대지진의 참상을 솔직하게 알리고 한국과 일본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는 미얀마 군사정권이 지금 태풍 피해 현장을 봉쇄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나, 중국 정부가 2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76년 탕산 대지진 때 보여준 모습과 아주 대조적이다. 특히 중국이 얼마 전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유혈 진압하면서 매스미디어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던 것과도 다르다.

이런 중국의 개방적인 태도는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정상외교와 함께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다. 대지진 몇 주 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을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일본을 들렀다. 두 사람은 일본과 새로운 관계를 약속했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지 않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는 자국 내 우파 진영의 점수를 따기보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대지진을 이유로 방문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면 이 대통령은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역사적 아픔이 여전한 세 나라가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런 움직임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손잡고 해결을 모색해야 할 이슈가 많다는 점은 아주 좋은 징조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시아 경제를 대표하는 한·중·일 정상은 중국 대지진과 미얀마 대홍수 사태, 원유·곡물가 급등,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어떻게 풀어갈지 논의해야 한다. 또 아시아 지역 빈곤을 퇴치하고 역내 채권·농산물 공동시장을 개설하는 문제도 다뤄야 한다. 한반도 긴장을 어떻게 완화할지도 빼놓을 수 없는 의제다.

특히 세 정상은 수익률이 아주 낮은 미국 재무부 채권에 투자돼 있는 외환 보유액 수조 달러를 어떻게 역내로 돌려 생산적으로 사용할지도 논의해야 한다. 이 돈을 회수해 지역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도로를 개선하고, 발전소·학교·병원 등을 새로 짓는 데 활용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제는 세 나라 정상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불가능한 것들이다. 따라서 중국 대지진은 희생자들에게는 비극적인 사건이기는 하지만 세 정상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동안 세 나라는 교역을 크게 늘렸지만 유럽 국가들처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지는 못했다. 세 나라와 인도 사이에도 유기적인 연결 고리가 형성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 경제를 대표하는 세 나라가 협력하지 않으면 각자 경제 규모가 커지는 만큼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쓰촨 대지진의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메릴린치 홍콩법인의 이코노미스트인 팅 루는 중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미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모건 스탠리 홍콩 법인의 이코노미스트인 데니스 얌은 대지진이라는 비극 때문에 “중국 정부가 긴축 정책에 조심스러워할 것”이라며 “대출 고삐를 생각보다 빨리 풀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대지진은 중국의 대외 개방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을 줄이는 노력이 본격화돼 경제적·정치적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밝아질 수 있다. 지금 동아시아의 상황은 전면적인 변화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 바로 쓰촨 대지진이다. 



정리=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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