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갇힌 아이들] 3. 중상층 아이보다 키 평균 7.4㎝ 작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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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 말미암아 질병에 부대끼며, 질병에 걸려 있으므로 가난해지는 것-. 그것이 빈곤에 갇힌 아이들이 부딪치고 있는 질곡의 순환 고리다. 본사 취재팀이 연구기관 및 관련 단체와 손잡고 조사한 결과 빈곤층 아이들은 중상층 가정보다 담배를 많이 피우며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 것이 일상화돼 있고, 집에 목욕할 장소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음습한 식습관이나 취약한 위생 상태는 저체중과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취재팀의 의뢰로 지난해 발표된 '국민건강.영양조사(17세 이하 2773명 대상)'를 재분석한 결과 저소득층 아이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으로 드러났다. 12~17세 남아 중 월 가구소득이 100만~200만원대(중산층)에선 2.2%가 흡연하고 있는 반면 100만원 미만(저소득층)의 계층에선 13.2%로 크게 증가했다.

음주 실태도 월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의 계층은 8.5%가 자주 혹은 가끔씩 술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그 상위 소득계층의 음주율은 4.5~5.5% 선이었다. 담배와 술이 성인보다 발달기의 청소년에게 훨씬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빈곤 아동의 높은 흡연.음주율은 장래 건강의 위협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선 공부방의 사회복지사들은 결식과 영양섭취 불균형의 문제도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취재팀이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협조로 전국의 공부방 아동 406명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챙겨줄 사람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어 한번이라도 밥을 굶은 경험이 있는 아동은 세명 중 한명꼴(33.1%)이었다.

청소년쉼터 '예은신나는 집'의 강명순 원장은 "빈곤 아동은 집에서 식사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라면.빵 등의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두통이나 신경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팀 조사에서 공부방 아동 중 일주일에 3~4회 이상 인스턴트(라면.빵.햄버거.피자) 식품을 먹는 아동의 비율은 32.8%나 됐으며 매일 한번 이상 먹는다는 아동도 10.6%였다.

영양 불균형 때문인지 빈곤 아동의 키도 작았다. 보사연의 분석 결과 17세 이하 남아의 평균신장은 월 소득 300만원 이상의 가구에선 129.8㎝인 반면 100만원 미만의 가구에선 122.4㎝였다.

단칸방에 온 식구가 모여사는 데다 화장실조차 없는 판자촌 아동의 열악하고 비위생적 환경도 큰 문제다. 취재팀 조사 결과 공부방 아동의 36.0%가 집에 목욕.샤워 시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해 아동복지학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아동은 일주일에 2~3회 이상 목욕하는 경우가 68.8%인 반면 빈곤 아동은 42.7%에 그쳤다. 빈곤 아동 중 한달에 한번 이하로 목욕한다는 경우도 5.4%나 됐다. 또 부모(27.8%)나 조부모(14.8%)와 함께 방을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경우 어른들의 흡연 때문에 감기.기침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상당수라는 게 공부방 관계자들의 얘기다.

우울증.산만증.불안증 등과 같은 정서장애도 빈곤 아동을 괴롭히는 문제다. 2000년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초.중.고교의 저소득층 학생 307명을 조사한 결과 10.1%가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정서장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학생들은 ▶주의가 산만하고 ▶수업시간에 엉뚱한 행동을 하며 ▶눈을 지나치게 깜빡거리거나 이유없이 습관적으로 몸을 비트는 '틱(tic)'장애를 보이는 경우 등이 많다는 게 일선 보건교사들의 말이다.

정서장애는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 방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울시 학교보건원 고복자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학교에서 의뢰해온 상담 사례를 보면 경제사정이 나빠 부모가 모두 생계에만 매달리는 가정의 아이일수록 주의력 결핍.행동장애 등을 보인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이규연.김기찬.김정하.손민호.백일현.이경용 기자
사진=안성식.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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