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은의 채널 서핑] '6시 내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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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내 고향'(KBS1)이 26일 방송 3000회를 맞는다. 이 단순소박한 농어촌 정보 프로그램이 13년째 변함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제작의도처럼 "고향을 떠난 도시인들의 각박한 삶에 위안을" 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기만큼 영향력도 커서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탈북자의 식당은 방송 이후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발급할 정도였고, 자기 업소나 상품을 소개하려는 업자들의 금품로비 등쌀에 몇 년 전 프로그램 담당 간부가 구속되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3000회를 맞은 제작진의 감회도 새롭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고향에의 향수'를 즐겁게 소비해왔던 시청자로서도 여러모로 자신의 시청태도를 돌아볼 만한 기회다. 나는 이렇게 반성해보고자 한다. 첫째, 나는 이 프로그램에 비친 농어촌의 모습이 실상과 얼마나 가까운지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농어민과 뉴스 속에서 돌 던지고 죽창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시위하는 농어민, 또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한숨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농어민 사이의 연결점을 찾는 데 늘 어려움을 겪어왔다. 둘째, 수확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치러야 했던 과정에 대한 생략된 영상보다는 눈앞의 고기나 과일이나 채소 쪽에 더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냈던 것 같다. 셋째, 카메라 속에서 도시인인 '우리'와 농어민인 '그들'이 선택권을 쥔 소비자와 그 소비자의 선택을 호소하는 생산자, 혹은 넓은 중심과 좁은 변방이라는 위치 속에 고정돼 있지는 않은가 별로 의심해 보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듯이 나 또한 그들에게서 '날카로운 농어촌 현실 고발' 대신 '푸근한 인심'과 '소박하고 순박한 현실만족'을 기대한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기를 기대해왔다. 그래서 지난 폭설대란 때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찾아간 뉴스 카메라가 시름에 잠긴 농민을 잠깐 비춘 뒤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에 더 많은 시선을 보낼 때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찾아와서 도와주시니 너무나 감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는 정답까지 들으면 금상첨화, 마음이 편해지면서 무너진 비닐하우스의 영상은 깨끗이 잊을 수 있었다.

종합하자면 나는 농어민의 생산물을 소비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순박한' 영상 또한 탐욕스럽게 소비해왔다. TV속의 농어촌이 얼마나 편향된 모습으로만 존재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도시인의 정서에 소구하는 영상으로만 존재하는지에 대해, 도시인인 내 속에 자리잡은 '은근한 우월감'이 얼마나 '치사빤쥬'인지에 대해 인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고로 나는 반성한다. 시청자가 반성하지 않으면, TV 또한 절대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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