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OK 해야 오바마도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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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13일(현지시간) 열릴 웨스트버지니아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앞두고 12일 사우스찰스턴의 한 바에서 당구를 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볼링 실력이 형편없는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는 당구에선 상당한 솜씨를 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스찰스턴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의 자문역인 흑인 여성 사업가 발레리 재럿(51·사진)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12일 보도했다.

재럿에 대한 오바마의 신뢰와 믿음은 확고하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미셸과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마치 누이와도 같은 존재”라고 털어놨을 정도다. 또 “그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럿은 오바마와 함께 유세 여행을 다니지 않을 때도 하루에 2~3번씩 통화하며 의견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캠프의 전략가들이 대부분 백인인 반면 재럿은 흑인 여성이다. 전략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민간·공공 부문에서 쌓은 다양한 경력을 바탕으로 오바마에게 껄끄러운 조언을 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신문은 오바마의 다른 측근들과 마찬가지로 재럿이 오바마에게 매우 충직한 데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호가호위하지 않는다고 높이 평가했다.

재럿은 부유한 흑인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명한 병리학자이자 흑인 중 최초로 시카고대 생물학부에서 종신교수로 임명된 제임스 보먼 박사였다. 어머니 바버라 보먼은 아동 심리학자였고, 시카고 에릭슨대학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흑백 인종이 어울려 사는 시카고의 부유층 거주지 하이드 파크에서 자란 그는 인종 갈등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오바마와 재럿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럿은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미시간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 87년부터 시카고 시정을 돌보고 있었다. 당시 25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시카고시 기획·개발국의 책임자였던 그는 하버드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젊고 유능한 변호사 미셸 로빈슨(오바마의 부인 미셸의 처녀 시절 이름)을 채용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미셸은 약혼자인 버락 오바마(당시 변호사)와 함께 만나줘야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오바마는 세 사람이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재럿의 비전과 능력을 테스트했고, 미셸에게 재럿을 상사로 모실 것을 적극 추천했다. 이후 이들 3명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2004년 오바마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재럿은 재정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오바마가 1995년 저서 『아버지로부터의 꿈』 을 냈을 때 출판기념 파티를 주최하기도 했다.

오바마가 대선에서 이기면 함께 백악관에 들어갈 것인지 묻자 재럿은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일단 앞에 놓인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정치 전문 웹진 허핑턴포스트는 “재럿은 경력이나 연고로 볼 때 시카고시 시장을 맡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재럿은 시카고증권거래소 이사장을 3년간 역임했는가 하면, 최근엔 ‘2016년 시카고 여름올림픽 추진위원회’ 위원에 임명됐다. 20여 년간 시카고 지역 공공주택 공급 사업에 관여했지만, 오바마의 초기 후원자 안톤 레즈코처럼 부패나 불법행위가 문제된 적도 없다. 현재 시카고 지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해비타트의 최고경영자(CEO)인 재럿은 재계 인사들과 시카고 남부 흑인사회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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