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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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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사진=오종택 기자

1963년 12월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당시 그의 앞에는 1인당 GNP 82달러라는 가난이 놓여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후 딸 박근혜는 제1야당의 대표가 됐다. 그의 앞에도 만만찮은 과제가 놓여 있다. 탄핵안 가결의 역풍으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된 당을 추슬러 총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3일 전당대회에서 朴대표는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리고 24일 당 대표로서의 첫날을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 터에 임시로 마련된 천막당사에서 시작했다. 朴대표와의 인터뷰는 비닐 천막이 바람에 날려 '후두둑' 소리를 내는 소음의 방해 속에서 진행됐다.

-오늘 당 대표로는 첫 출근인데요.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현충원을 참배했을 때 방명록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朴대표 앞에 놓인 과제는 아무래도 탄핵안 가결 후 추락한 당 지지도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일 텐데요. 탄핵안 가결 당시 이 정도의 역풍을 예상했습니까.

"예상 못 했어요.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응답이 60%였고 탄핵안에 반대한다는 응답도 60%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그렇게밖에는 선택할 수 없도록 몰렸습니다. 당당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탄핵안 가결 직후 당 지도부는 거품이 곧 빠질 것이라고 했는데요.

"국민들께서 한나라당이, 자신도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니면서 누구를 탄핵하느냐고 노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씀 한마디로 유능한 경영인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법치의 근본을 부정하고 우습게 안다면 중대한 사태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여러 번 대통령에게 줬습니다. 국회의장도 두번이나 회담을 제의하고, 저도 그날 라디오에서 호소했습니다. 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안이 철회될 수 있는 일이라고요. 대통령이 불안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포기할 수 있는 게 리더십 아닙니까? 그런데 전부 거절되고 그날 회견에서 또 한번 재신임과 연결해 '총선 올인'을 말했습니다. 이는 국민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특정 정당을 찍지 않으면 안 되게 유도한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1야당의 새 대표로서 탄핵안과 관련해 盧대통령에게 어떤 고언을 하시겠습니까.

"탄핵과 관련해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그 결과에 모두 승복해야 합니다. 만약 헌재 판결이 불만스러운 사람들이 또 반대 시위를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법치가 근본부터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있을 수 없습니다."

-촛불시위에 대해 불법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촛불시위가 지금 문화행사다, 아니다 등의 논란이 있어 혼란스러운데 이제는 모두가 조용히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야 합니다."

-당내 수도권 출마자들 중 일부는 탄핵안을 철회하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만나겠습니다. 그분들의 절박함과 위기감.충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전당대회를 치르는 동안 TV토론에서, 대의원들 앞에서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TV토론에서 그는 탄핵안 철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민 여러분과 대의원들이 그걸 봤고, 그 결과 제가 선택받았습니다. 약속 드린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실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회를 얘기하는 소장파들도 그 점은 양보해야 합니다."

-선거일까지 남은 기간에 민심을 되돌릴 자신은 있습니까.

"최선을 다해야지요. 시간은 짧지만 당이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생 챙기기에 당력을 기울이고 정책으로 대결하겠습니다. 국민께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자산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정치에 입문한 지 7년째입니다. 제 나름으로는 개인의 이득이나 한나라당만의 이득을 떠나 국익 차원에서 항상 생각하고, 정치를 했습니다. 원칙과 소신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그걸 지키려고 굉장히 노력해 왔습니다. 제 얘기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쑥스럽지만…."

-총선에서 몇 석이나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많을수록 좋은데 민심을 감히 숫자로 헤아릴 수는 없고…. 최선을 다해야죠. 한나라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지난 1년간 어떻게 나라가 이끌어져 왔는지, 경제가 어떻게 됐는지, 국론이 얼마나 분열됐는지 국민이 다 아십니다. 야당이 전멸하면 견제할 세력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건 무서운 일입니다. 한나라당이 잘못한 것도 많지만 인정받을 것도 있다고 봅니다. 이라크 파병 등 국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오히려 여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한나라당이 비판을 감수한 채 통과시켰습니다."

-盧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만나서 탄핵정국 등에 대해 대화할 의사는 있습니까.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과 국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든 만나야 하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엔 '차떼기당'말고도 '영남당' '수구꼴통당'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역주의에 편승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든가 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한 그건 철저히 지킬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가 이용하지 않으려 하면 이 문제는 해결됩니다. 또 기득권에 안주하는 수구정당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실제는 야당을 수년째 해 기득권도 없는데 과거의 관행.관성에 끌려온 것 같습니다. 지금 당이 위기인 상황에서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

-호남에서 한나라당은 오래도록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외면한 측면도 있고요.

"하루아침에 안 되겠지만 우리가 더 다가가겠습니다. 호남에 비례대표 3명을 우선 배정하는 것은 지켜질 것입니다."

-어제(23일) 대표 수락 연설에서 신(新)안보정당을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여태껏 안보는 외부의 위협만 강조됐습니다. 지금은 외부문제 못지않게 내부에서 일어나는 위협이 안보차원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험수위입니다. 첫째가 국론분열입니다. 이념.계층.세대 간에 이렇게 갈가리 찢어진 적이 없습니다. 정치 불신도 깊습니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도 문제입니다.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에서 뭔가 개선하는 일을 우리가 챙기겠습니다. 서로를 인정해 긍정과 화합의 자세로 국론 분열을 치유하자는 게 신안보정당의 개념입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오랫동안 일하셨는데 혹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계획이 있습니까.

"김정일 위원장과는 지난번(2002년 5월) 만나서 서로 가식 없이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저한테 큰 경험이었고 약속받은 게 있습니다. 남북 축구 교류와 금강산 댐 공동조사라든지,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 6.25 행방불명자와 국군포로 생사 확인 등입니다. 지금 북한을 방문한다는 계획이 없지만 남북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그 역할을 하겠습니다."

-지난해 조각 때 盧대통령 측에게서 통일부 장관직을 제의받았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공식 제의를 받은 것은 없어요."

-비공식 제의는 있었습니까.

"그건 뭐…."(고개를 끄덕임)

-탄핵안 가결을 전후해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지금 개헌을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전부터 임기 4년의 대통령 중임제를 찬성해 왔습니다. 5년 단임제의 폐해는 다 느끼고 있는 일 아닙니까.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실제로 2, 3년 정도밖에 일을 못합니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외교노선이 다 바뀌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국가경쟁력만 낭비하는 셈입니다."

-한때 당내에서 분권형 대통령제가 논의됐는데요.

"지금 의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으므로 의회가 신뢰받는 풍토부터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 요소도 많습니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를 경우 DJP정부 때처럼 더 큰 혼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과 다수당이 같으면 제왕적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선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계십니까.

"저는 자리를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편안하게 사는 데 제가 할 역할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저는 청와대에서 살면서 권력을 지켜보고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피를 말리는 중책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권력이 어떤 건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고요."

-열린우리당에서는 朴대표가 선출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덕이고, 유신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고 했는데요.

"(차분함이 이 대목에서 한번 흔들렸다. 목소리 톤을 높여) 그게 문제입니다. 통일부 장관 제의도 하고,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을 흘리고는 이제 와서 말이 왔다갔다 합니다. 열린우리당은 개혁을 표방하는 당인데 개혁이 과연 이런 것인지 질문하고 싶어요. 당시 가난을 해결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한 것을 독재라고 한다면 아직도 어렵고 배고픈 국민이 많은데 이 상황은 뭐냐고 묻고 싶습니다."

-당내에선 '朴대표가 늘 교과서처럼 좋은 말만 하는데 정치를 업그레이드하는 구체적인 콘텐츠(내용)는 부족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비판에 대해선 더 분발하고, 더 긴장하라는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 비판을 오히려 활력소로 생각하겠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아버지와 닮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국가관과 사심없는 마음입니다."

-49kg의 가녀린 몸인데 총선일까지의 강행군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속이 얼마나 강한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정리=박승희.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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