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福祉不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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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6일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는 신문편집인협회 초청토론에서 공격적인 정치적 화두(話頭)하나를 던졌다.「세계 일류국가론」이다.그는 그 일류국가론과 현정부의 세계화의 차이를 묻는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세계화를 한다고 했다가 여러가지 얘기를 해 종잡을 수가 없다.일류국가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및 분배를 제대로 해야 한다.지금 정부가 가는 길은 일류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복지정책에 있어 확연히 드러난다.장애인과 노인층,여성문제에 대해 현 정권은 관심이 없는등 일류 국가로 가는 길을 외면하고 있다.』 다분히 선거때의 표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런 식의 문제제기라면 얼마든지 논쟁이 오래 끌고확대되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우리 정치권은 정작 다툼을 해볼만한 이런 쟁점,이런 화두에는 관심이 없다.김총재의 발언내용이 사뭇 공격적인 것이었는데도 가타부타 일언반구의 응대도 없다.
다른 나라에선 이런 문제야말로 핵심적인 정치논쟁,선거쟁점거리다. 마거릿 대처가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던 지난 79년5월 영국총선때의 주된 쟁점이 바로「영국병」이란 이름의 복지문제와 노조파업문제였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때마다 입씨름을 벌 이는 주제도 바로 복지문제다.
국가도,정치도 결국은 국민을 어떻게 잘 살 수 있게 하느냐가궁극적 목표일 수밖에 없다.그런 이상 선거때마다 복지가 정치적쟁점이 되는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에서만은 한번도 그것이 정치적쟁점이 된 일이 없다.
실은 그 까닭이 없지는 않다.첫째로 역대 정권들은 복지문제를그저 여유있을 때 피서여행 가고 영화관 가는 식의 배부른 짓인것으로 국민들을 세뇌해 놓았다.
그 결과 복지의 실수요자인 국민들마저 복지는 먼 훗날의 일,남의 나라 일,기껏해야 이상주의적 욕구쯤으로 치부해 별반 관심이 없다.
그러나 복지는 우리들이 먹고 자고 입고 쉬는 삶의 기본문제를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지극히 기초적인 과제다.
복지가 정치적 쟁점에서는 물론 국민의 관심사도 되지 못하고 있는 두번째 이유는 우리나라의 복지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이기 때문이다.없다시피하니 관심을 가질 턱이없다. 지방정부의 예산까지를 포함한 우리나라 총예산 가운데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0%가 채 안된다.
이는 스위스(63%).독일(47%).영국(46%)등 선진국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기막힌 것은 그 국민이 우리나라에 품팔러 오는 방글라데시(12.3%)나 스리랑카(18.6%)보다도 낮은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3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인간안보」 정상회의에는 우리도참가하여 경제강국임을 한껏 뽐냈다.귀국후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있었다.5월엔 국민복지기획단이란 추진체도발족했다.
그런데 그런 일련의 움직임끝에 마련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복지는 여전히 「부동(不動)」이다.
「약속」의 체면을 살리려 시늉을 하기는 했다.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이 전체 예산 증가율 16%를 약간 웃도는 18%로 나타나고 있다.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식이다.
소년소녀가장 월생활용품비 3만2천원에서 4만원,장애인 생계보조수당 월2만원에서 3만원,경로당 운영비 월3만원에서 4만원….증액비율로 보면 25~50%로 어마어마하다.그러나 금액상으로는 고작 한달에 8천원,1만원 느는 것이다.물가상 승은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걸로 무엇이 얼마나 나아질 것인가.
***허울좋은 개선 내용 지난 2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미래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혀 화제가 됐다.
타임머신을 타고 월 3만원,4만원 지원을 받는 장애인.소년소녀가장의 미래로 날아가 보면 어떤 모습일까.
그러나 정치권은 복지수준이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인 「복지부동(福祉不動)」의 현실은 외면한 채 해묵고 저질스런 색깔논쟁이나재연하는 과거로의 여행에만 몰두하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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