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학교교육 불만 때문에 되살아나는 私塾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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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38면

19세기 말 전형적인 사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풍경. 김명호 제공

학숙(學塾)은 청(淸) 말인 1905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2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육기구였다. 대도시에서 벽촌에 이르기까지 없는 곳이 없었다.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했지만 규범이 획일적이지 않고 명칭과 종류가 다양했다. 가숙(家塾)과 사숙(私塾)은 사립이고, 의숙(義塾)이나 의학(義學)은 공립이었다. 대가족인 경우 집안에 선생을 청해 가숙을 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못한 가정에서는 선생이 자신의 집 바깥채에 교육시설을 차려놓고 학생을 모집해 가르치는 사숙에 자녀들을 보냈다. 의숙이나 의학은 지방관, 지역의 명망가, 동향단체에서 만든 교육기관으로 관청의 뒷마당에 교실을 마련하거나 시조(始祖)의 사당이 교육장소가 되곤 했다.

가숙이나 의숙은 교사들이 피고용인이다 보니 집주인이나 설립자의 간섭이 심했고 선생도 어느 정도 검증을 거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숙은 달랐다. 무엇을 가르치든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문화가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는 자녀들을 사숙에 보내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사숙이야말로 중국 전통교육의 상징이었다.

사숙의 선생은 사설학원의 원장 겸 교사였다. 배우겠다고 오는 학생이 없으면 호구지책에 문제가 있었다. 과거(科擧)에는 낙방했어도 향리에서는 그런대로 인정받는 학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학생을 끌어 모으고 뺏기지 않는 재주가 없으면 문을 닫아야 했다.

교사의 수준도 제각각이었지만 광둥(廣東) 지역은 예외였다. 글자만 읽을 줄 알아도 사숙을 차릴 수 있었다. 대신 신체에 손상이 가지 않게 두들겨 팰 줄 아는 기술을 갖춰야 했다. 다른 지역보다 광둥이 특히 심했다. 광둥인들은 상업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었지만 19세기 중엽부터 교육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숙을 복복재(卜卜齋)라고 불렀다. 복복(卜卜)의 광둥어 발음이 사람을 때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우스갯소리로 붙인 별칭이었다.

당시 사숙의 교육방법은 ‘무조건 암기’였다. 문장의 내용 따위는 알 필요도 없었다. 학생들은 삼자경(三字經), 백가성(百家性), 천자문(千字文)에서 시작해 사서오경(四書五經)까지 선생 앞에서 책을 보지 않고 배송해야 했다. 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장멍린(蔣夢麟)은 “배송할 때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백 번을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회초리가 날아왔다. 선생이 기분이라도 나쁜 날은 한밤중이 될 때까지 집에 가지 못했다”고 사숙 시절을 회고한 바 있다.

밤마다 사숙 앞에는 아들들이 얻어맞는 소리에 가슴을 졸이며 감히 들어가기는커녕 불평 한마디 못하고 서성이는 여인이 많았다. ‘때리면서 키우지 않으면 사람 노릇을 못한다(不打不成人), 두들겨 패지 않으면 관리 노릇을 할 수 없다(不打不作官)’는 등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소리만 되새기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 사숙 앞에서는 눈물겨운 모자 상봉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엉덩이와 손바닥이 성할 날이 없었고 머리에는 혹투성이였다. 힘들기는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온종일 제대로 배송 못한 학생들을 외울 때까지 두들겨 패다 보니 허리와 팔이 쑤셔 밤잠을 제대로 자는 날이 드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듣다 훗날 사회과학원 원장이 된 궈모뤄(郭沫若)는 청년 시절 대표적인 사숙 폐지론자였다. “우리 선생의 엄한 형교(刑敎)는 인근에 명성이 자자했다. 3척짜리 대나무로 머리건 어디건 난타하는 비(非)정식 타법과 엉덩이를 형리(刑吏)가 죄인 때리듯이 하는 정식 타법을 골고루 구사했다”며 “특히 여름에 얇은 옷을 입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2005년 두 명의 기업인이 ‘고전 문화의 배양’과 ‘격조 있는 사고’가 목표라며 쑤저우(蘇州)에 현대식 사숙을 개업했다. 충칭(重慶)·장시(江西)·후난(湖南) 등지에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경제특구 선전과 상하이(上海)에는 국학 교육과 함께 도덕관과 예절을 중시하는 사숙이 문을 열었다.

허베이(河北)의 한 현(縣)에서는 옛날 사숙의 교육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사숙이 문을 열자 자녀들을 사숙에만 보내는 학부모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도 사숙의 지지자들은 아니다. 현행 교육 상황에 대한 불만과 교사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녀들을 사숙에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현대의 사숙은 아직도 시험 단계에 불과하다. 전승(傳承)과 복고(復古)처럼 구분하기 힘든 것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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