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투란도트·아이다 ‘오페라 릴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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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3일부터 6일 동안 번갈아가며 같은 무대를 쓰는 아이다<左>와 투란도트<右>의 세트 사진을 반씩 잘라 합쳤다. 왼쪽은 동물 모양 가면을 쓴 이집트 군대가, 오른쪽은 고대 중국의 고관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연출가는 두 무대의 공통점을 2m 높이의 계단으로 잡았다.

7일 오전 9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8t짜리 컨테이너 박스 9개가 이탈리아에서 도착했다. 무대에는 나무로 된 8개 층의 계단이 세워졌고 그 위에 은빛 피라미드가 설치됐다. 오페라 ‘아이다’의 무대다. 무대를 설치하고 작은 소품까지 점검하는 모습은 여느 공연의 준비 과정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무대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우선 준비 기간이다. ‘아이다’의 첫날 공연까지는 엿새가 남아있다. 일반 오페라는 1~2일 전에 무대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이 작품을 주최하는 한국오페라단은 13일 시작하는 공연을 위해 이날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빌린 것이다. 그 비밀은 격일 공연에 있다.

13~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베르디의 ‘아이다’와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13·15·17일은 ‘아이다’, 14·16·18일은 ‘투란도트’가 공연된다.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유례없는 격일 공연이다. 그것도 오페라 연출의 거장으로 불리는 피에리 루이지 피치(73)가 기획한 초대형 무대다.

이날 무대 설치 과정을 지켜보던 피치의 수제자 마시모 가스파론(39)은 “워낙 스케일이 큰 공연이다 보니 하루이틀 준비해서는 공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무대를 다시 꾸려야하는 만큼 준비기간 중 무대 전환 리허설도 필요하게 됐다”며 “무대 전환만을 담당하는 팀장이 따로 있다는 것도 이번 공연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마체라타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의 총감독인 피치는 2006년 마체라타에서도 이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고대의 원형 스타디움을 오페라 무대로 바꾼 이 공연장에서 ‘아이다’와 ‘투란도트’에 ‘마술피리’까지 더해 매일 무대를 바꿔가며 한 달 넘게 공연했다.

격일 공연의 의미를 묻는 e-메일 질문에 대해 피치는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꿈을 위한 축제”라며 “매일 감쪽같이 바뀌는 무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격일 공연은 ‘사흘+사흘’로 이어지는 공연에 비해 출연 가수들의 컨디션 조절이 쉬워 관객에게 질 좋은 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 또 현재 한국에는 정기적인 오페라 페스티벌이 없기 때문에 이틀 연속으로 대작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은 청중에게 흔치 않은 기회다.

관객층이 두텁고 빠른 무대 전환도 가능한 유럽의 오페라 전용 극장에서는 격일 공연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라스칼라 극장은 하루에도 3개의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최근 마련했다. 옥상까지 이용해 다음 무대를 미리 준비하고 숨겨 놓을 수 있는 설비다. 하지만 이같은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오페라 스태프들이 밤샘작업을 통해 매번 무대를 바꿔야 한다. 게다가 ‘아이다’의 배경은 이집트, ‘투란도트’는 중국이다.

두 작품의 무대 변환을 최소화하는 공통 요소로서 피치가 사용한 장치는 바로 ‘계단’이다. 피치는 두 작품의 공통점으로 ‘꿈을 향해 내딛는 시작의 의미’를 꼽았다.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해 다음 단계인 죽음을 선택하는 주인공들의 심정을 계단으로 투사했다는 것이다. 계단을 사이에 둔 서로 다른 단은 신분·계급의 차이 때문에 이뤄지지 못하는 스토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피치는 지난해 단 두 차례의 내한 공연(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으로 한국 오페라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무대마다 한두 가지의 강한 색채를 지정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고, 과감한 생략과 절제로 스케일 큰 무대를 보여주는 이른바 ‘피치 스타일’이다.

모델 같은 몸매의 성악가를 골라 과감하게 신체를 노출시키는 장면 또한 국내에서는 쉽게 시도할 수 없는 그만의 연출법 중 하나다. 덕분에 ‘라 트라비아타’의 30만원대 고가 티켓까지 매진시키며 국내에 ‘피치 스타일’을 접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 6일간의 공연에서 피치는 ‘아이다’에는 황금색과 흰색, ‘투란도트’에는 보라색과 붉은색을 선택했다. 지난해 공연에 비해 동양적인 색채가 짙어졌다. 전라의 무용수들은 이번에도 등장한다. 피치는 한국에서 한 해 두 번씩 2009년까지 작품을 올릴 계획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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