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귀는 없고 입만 가진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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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 재경위의 국정감사가 사흘째 이어진 27일 재경원 회의실에서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졌다.홍재형(洪在馨)부총리가 답변하는도중 배석한 재경원간부 일부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눈을 의원석으로 돌리니 절반이상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자리에 남아있는 의원들조차도 洪부총리의 답변을 듣기보다는 옆자리 의원과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었다.더 한심한 것은 부총리의 답변이 이어지는데 정작 해당질의를 한 의원은 자리에 없었다.맥빠지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었다.
각 당은 이번 국감이 시작되기전 14대 마지막 정기국회라해서제각기 야무진 출사표를 던졌었다.그런데 막상 국감 시작 사흘도지나지않아 대부분 상임위의 국감장이 이런 식이다.긴장감이 감돌아야할 국감장이 이렇게 된데는 여러 원인이 총 체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정부측 답변의「따분함」을 꼽을수 있다.재경위만 예로들면 洪부총리는 답변을 하면서 절대 고개를 드는 법이 없다.
탁자위에 놓인 답변서를「낭독」하는게 전부다.이러니 옆자리의 직원들로서는 졸지않을 도리가 없다.그러나 이런게 부실국감의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국감의 주체로서 모든 잘잘못은1차로 의원들이 져야한다.사흘 국감동안 단 하루 밖에 출석하지않은 한 의원의 얘기를 들어보자.
『의정활동이 의원의 본분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하지만 솔직히 국감장에 하루 앉아있는 것보다 지역구에 내려가 밥한번 사는게「표」에 도움이 되는 현실입니다.』 내년 총선을 앞둔 14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당초 출사표에서 내건「이상」보다「현실」에 치우친 모습을 하고 있는건 이같은 이유들 때문이다.물론 개별의원들의 질의수준이나 내용은 전보다 훨씬 나아진게 사실이다. 일부 의욕적인 의원들은 국감장에 직접 만든「백서」나「정책자료집」을 돌리고 있기도 하다.문제는 국감에 대한 성실성이다.피감자나 수감자 모두 이 점에선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게 없다.대부분 의원들은 자기 질의만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이 다.「듣기」보다「말하기」가 우리정치에선 중요하기 때문이다.뭔가 크게잘못돼 있다.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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