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세계] 환자와 병원을 잇는 의료서비스 ‘교통정리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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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아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코디네이터<左>가 수영선수에게 스포츠의학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근무하는 김은만(39·여)씨. 서울대에서 간호학 학·석·박사 학위를 딴 그녀의 원래 직업은 간호사였다. 이 병원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거쳐 장기이식병동 수간호사로 한창 일하던 2005년 어느 날. 심장이식 문제를 놓고 장기 공여자와 수혜자가 오랜 시간 고민하는 것을 지켜봤다. “아, 장기 이식은 시간을 다투는 일인데…. 중간에 이를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갖고 병원과 상의한 끝에 그해 6월 병원 코디네이터로 변신했다. 그것도 이 직업의 세계에서 가장 힘들다는 장기 이식 분야에서 일한 지 벌써 3년. 그녀의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 둔 뇌사자의 가족에게 장기 제공을 설득해야 했고, 장기 수혜자들과의 조율도 간단치 않았다. 그녀는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하지만 말기 환자가 살아났을 때 느끼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선호 직종으로”=국내에 이 직종이 등장한 것은 1994년 전후. 박인출 서울 강남 예치과 원장이 “미국 병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배워 환자를 모시는 풍토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인테리어나 브랜드를 관리할 코디네이터를 뒀다. 이후 98년 외환위기와 2001년 의약분업으로 병원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차별화 수단으로 코디네이터 자리를 마련했다. 이 직업의 기본 업무는 진찰 시간이나 수술날을 정하고 환자의 몸상태를 점검하는 일이다. 그런데 병원이 대형화하고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무가 다양해졌다. 병원관련 재무·통역·마케팅 일도 한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코디네이터인 박수아 대한병원코디네이터협회 부회장은 “고객과 병원 사이를 조율하는 윤활유 같은 직업”이라고 정의했다. “의사는 진료에 집중하고 환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보조자”라는 설명이다. 또 요즘 이 직업은 20대부터 재취업을 원하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인기있는 직업으로 떠올랐다. 인크루트가 지난달 조사한 유망 신종 직업에선 6위를 기록했다.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아직은 기본적인 환자 유치나 관리에 집중돼 있지만 앞으로는 의료 지식, 경영 전략, 서비스 마인드의 3박자를 갖춘 전문병원 코디네이터의 입지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천성적으로 친절한 사람이 딱”=박수아 부회장은 “지망생들을 교육하다 보면 ‘서비스는 천성이다’는 말에 200% 공감하게 된다”며 “직무적성검사를 통해 자신을 진단하고 서비스에 대한 긍정적 성향이 있는지 판단하면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인크루트와 대한병원코디네이터협회 공동 조사 결과 34명 중 15명이 채용 시 인성을 가장 많이 고려한다고 답했다. 7명은 인성 중에서도 ‘서비스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삼성서울병원 대장암센터에서 근무하는 손현숙 코디네이터는 “매일 아픈 환자를 만나야 하는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환자는 물론 자신에게도 힘든 생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지식을 향한 열정도 중요하다.

◇민간 자격증만 따도 취업 가능=병원 코디네이터가 되려면 의료경영학과나 간호학과 혹은 보건학과를 졸업하면 유리하다. 하지만 민간기관 교육을 수료하고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취업할 수 있다. 대한병원코디네이터협회에서만 2004년부터 1년에 2~3번 시험을 치러 지금까지 5000여 명을 배출했다. HQM 의료경영연구소처럼 교육과 인증을 하는 민간기관이 여럿 있어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맡는 일이나 분야에 따라 초봉이 1500만원에서부터 3000만원까지 다양하다. 병원 규모도 연봉을 결정하는 변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조사한 병원코디네이터의 평균 연봉은 2600만원 선이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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