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수술도 결국 의사 실력에 달렸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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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24면

김선한 교수가 의료용 로봇 조종석에 앉아 손가락과 발을 이용한 수술법을 보여주고 있다.

로봇수술에 대한 의료진과 환자들의 관심이 높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수술에 700만~1500만원이 드는데도 절개 부위가 작고 안전하다며 로봇수술을 원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직장암 로봇수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히는 고려대 의대 김선한(50·외과) 교수를 지난달 24일 만났다.

직장암 수술 세계적 권위자 고려대 김선한 교수

지난달 중순 수술용 로봇 ‘다빈치’를 개발한 인튜이티브사의 관계자가 방한해 김 교수의 직장암 수술 장면을 녹화해 갔다. 외국의 의료진에게 ‘다빈치를 이용한 직장암 수술을 이런 순서와 방식에 따라 한다’고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 손가락엔 떨림이 있을지 몰라도 (연결된) 로봇 손가락은 미세한 떨림도 없이 내가 원하는 부위를 정확히 자르고 지져주는 게 신기해요. 중요한 것은 로봇수술의 성과를 의사의 실력이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빈치’의 로봇팔 부분을 ‘슬레이브(slave·일꾼)’, 의사의 조종석을 ‘마스터(master·주인)’라고 부르죠.”

1개의 눈과 팔 3개로 정밀 수술
로봇이라고 해서 만화나 SF영화의 주인공 같은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빈치의 경우 ‘거두절미’하고 기능적으로 꼭 필요한 4개의 팔만 갖고 있다. 이 중 3개는 정교한 손톱 모양의 가위·집게 등 수술 기구를 끼워 쓸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돼 눈 역할을 한다. 환자 몸에 작은 구멍을 뚫어 이 손가락을 넣은 뒤 따로 떨어진 ‘마스터’ 파트에서 조정하는 방식이다. 집도의가 양손의 둘째, 셋째 손가락을 고리 모양의 조종간에 끼워 움직이면 4개의 팔은 이에 따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의사는 발 쪽 4개의 페달을 이용해 로봇팔을 고정하거나 렌즈를 줌인하고 전기를 흘려 암세포를 태운다. 아직은 보조의사와 간호사가 환자 옆에서 로봇으로 못하는 일부 시술을 돕는다.

김 교수는 로봇수술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복강경 수술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복강경 수술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온 그는 “풍부한 복강경 수술 경험이 로봇수술을 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전립선이나 직장·방광 등은 골반강이라는 좁은 동굴 모양의 뼈대 안에 들어가 있는 데다 신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수술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요. 수술 후 성기능과 배뇨기능 등에 부작용이 생기기 쉬운 이유죠. 복강경 수술을 하는 것도 그냥 배를 갈라서는 의사의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미세한 신경까지 보이는 3차원 영상
김 교수가 로봇수술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3차원 영상이다. 그는 처음 다빈치를 통해 수술하면서 봤던 카메라 영상에 대해 한마디로 “쇼킹했다”고 표현했다.
“스포츠 중계를 볼 때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경기장 모습에서부터 줌인해 들어가 경기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선수 얼굴의 땀방울까지 보여주는 영상과 평면적인 의료 영상이 비교돼 분노가 치밀곤 했어요. 그런데 로봇수술 영상을 보는 순간 그 분노가 한번에 풀렸죠. ‘아, 전에 보지 못했던 신경이 이렇게도 보이는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어요.”

왼쪽 발로 페달을 쭉 밟는 순간 조그만 그 골반강 속이 3차원으로 크게 확대돼 시야에 들어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로봇수술은 조종석에 앉아서 집도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체력 소모가 덜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로봇과 인간의 팀워크
환자 입장에선 어떨까. 그 비싼 수술비를 낼 만한 가치가 있을까.
“비싸죠. 그래서 로봇수술을 하면 효과가 더 좋을 것 같아도 포기하는 분들이 계세요. 어쨌든 전립선암 로봇수술의 경우 부작용 발생률 등에 있어 연구 결과가 좋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로봇수술은 이제 도입 단계예요. 전립선암 외에는 의학적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죠. 환자들은 단기적으로 복강경 수술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어요. 배뇨기능이나 성기능 문제는 수술 후 3~6개월이 지나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재발률도 최소한 1~2년은 기다려 봐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김 교수가 그래도 로봇수술을 권하는 건 골반강이 평균보다 작은 남성, 그중에서도 암이 직장의 끝부분에 있는 경우다. 남성의 골반강이 원래 여성보다 작다 보니 그만큼 수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로봇수술을 하다 보면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란 개념이 참 와 닿아요. 아날로그 인간과 디지털 로봇이 수술실에서 한 팀을 이뤄 일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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