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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드라마로 뜨는 ‘일지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호 06면

고우영의 만화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야기하는 드라마’라 할 만했다. 그런 만큼 영상물과 접붙을 가능성도 컸다. 그의 작품이 영화와 TV 드라마로 인기를 모은 까닭이다.고우영과 같은 시기에 한 일간지에 만평을 연재하며 긴 세월 교유했던 만화가 허어씨는 이를 뒷받침하는 실화를 들려준다.

“언젠가 방송 일로 방송국을 드나들고 있을 때 드라마 담당 대왕(고참) PD가 신입사원 교육을 하는데 고우영의 ‘일지매’ 만화를 펼쳐놓고 카메라 앵글과 장면 전환을 설명하며 ‘이것이 바로 드라마의 기본’이라고 강조하면서 고우영 만화를 열심히 보고 따라 배우기를 강조하는 걸 봤다.”

고우영 만화 가운데 캐릭터의 개성과 극적 긴장감으로 충무로와 여의도의 러브콜을 가장 많이 받는 작품이 바로 ‘일지매’다. 영화뿐 아니라 1993년 장동건·염정아 주연 TV물로 제작돼 큰 인기를 모았다. 프로 바둑 기사 유창혁 9단의 별명이 ‘일지매’인 걸 보면 주인공의 매력이 폭넓은 대중성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지매’는 사실 고우영의 창작물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작품의 배경인 조선시대의 어떤 사료를 뒤져 봐도 일지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고우영은 ‘일지매’ 탄생의 비밀을 이렇게 털어놨다. “내가 자신 있게 일지매 소재를 택했을 때는 믿는 데가 있었다. 6·25전쟁 전 아직은 청계천이 복개되지 않아 그 주변의 시장 바닥에 즐비하게 널려 있던 서푼짜리 이야기책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표지에 갓을 쓴 미남자가 그려진 일지매 책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찾아 뼈대를 삼아 줄거리를 엮어 나갈 속셈이었는데, 그 어떤 곳을 뒤져도 찾을 길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일지매에 관한 자료는 고전 전집은 물론 백과사전에서조차 단 한 줄의 언급도 구할 도리가 없었다. 도입 부분을 가설로 메우고 슬슬 시간을 벌다 보면 곧 참고자료를 구하게 되려니 했던 꾀 많은 당나귀의 바람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아 일지매 스토리는 100% 내가 만들어낸 창작물이 되고 말았다. 그런 까닭에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편애를 하게 되는 책이다.”

21세기 들어서도 ‘일지매’는 여전히 인기다. 5월 말 전파를 탈 SBS-TV 드라마 ‘일지매’(주연 이준기, 연출 이용석)에 연말께 방송 예정인 MBC-TV 드라마 ‘일지매’(주연 이승기, 연출 황인뢰)가 맞붙는다.
여장 남자 캐릭터인 일지매를 창조한 고우영 만화의 시대를 뛰어넘는 독창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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