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분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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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분노한 청년’이라는 뜻의 ‘분청’이란 단어가 요즘 중국권에서 유행이다. 거창한 반일(反日) 시위나 영토 분쟁 등이 생길라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격정적인 중국 젊은이들이다. 때로는 민간 선박을 이용해 일본과 영토 분쟁을 치르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에 기습 상륙하고, 미국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에 대해서는 격렬한 시위 끝에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다.

이 말이 처음 나타난 곳은 홍콩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사회적 불평등에 불만을 표현한 젊은 계층을 ‘분노 청년’이라고 일컬으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원은 18세기 과거 계몽주의의 딱딱한 틀을 깨고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며 등장한 독일의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질풍과 노도)’을 번역하면서 파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뜻에서는 89년 6·4 천안문 사태에 참여한 젊은이들까지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본격적인 등장은 90년대 이후다. 대부분 협애한 민족주의를 지니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 갖은 욕설과 험구를 서슴지 않는 젊은이들이다.

요즘 이들이 보이는 가장 큰 공통점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민족주의다. 중국이 과거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는 점을 크게 의식한다. 그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강한 중국’의 열망이 함께 내세워진다.

사회적으로는 중국에 만연한 관료부패 문제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부패한 관료는 모두 목을 쳐야 한다”는 극언도 자주 선을 보인다. 불공정한 사회현상에 관심을 쏟는 측면은 세계 어느 지역의 젊은이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과거 100여 년 동안 자국이 받았던 피해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은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서방 제국주의로부터의 피해의식과 이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집권 공산당의 통제적 교육의 산물이라는 분석이다.

단순하고 좁은 민족주의에 빠져 티베트에 대한 서방세계의 인식을 무조건적인 ‘중국 뒷다리 잡기’식으로 받아들이는 현상. 그것이 끝내는 전 세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폭력 등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되는 부분. 이 때문에 중국 일각에서도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중국의 젊은이들이 끝내 폭력적 성향을 드러냈다. 폭력을 행사한 젊은이들을 분명하게 가려 그 잘못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평화적으로 대열에 참여한 대다수의 젊은이와 중국인 전체에까지 무차별적인 반감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대신 주목할 것은 따로 있다. ‘중화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집단의식 속에서 키워가는 닫혀진 애국주의다. 전체주의적 흐름이 느껴지는 중국의 그 이면을 우리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살펴야 한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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