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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식' 유럽 골프 여행 스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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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의 설렘이 몹시 길었던 여행이었다. 입사 후 줄곧 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족히 6년 이상의 설렘과 준비가 동반된 여정이었다.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 불쑥 사표를 내밀자 다들 당황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무모한 여정, 그리고 그 여정에 함께 투신한 철없는 남편에 대해서는 더욱 어이없어 하는 표정들….

남편이 대학에 들어가던 해, 고작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내… 12살 띠동갑 부부… 살아온 세월의 공통분모가 적어 의견대립이 많고 그래서 늘 툭닥대던 부부였지만 우리의 유일한 교집합 원소였던 ‘골프와 여행’이 뼈대를 이뤘던 여행이었기에 쉽게 혼연일체 의기투합을 할 수 있었다. 각자 사직서와 휴직계로 1년이라는 긴 쉼표를 만들어냈고, 다량의 무모함과 도전정신을 버무려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골프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한국 사회에서 부부가 유럽 골프여행을 떠난다 함은 백만 안티 양병을 자초함이기에 공적인 곳에 노출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실상을 따지고 본다면 우리는 한국에서 골프를, 그것도 부부가 함께 즐기기엔 가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경제 수준이다. 서울에서도 가장 집값 싼 동네 중 한 곳에서 대출에 흠뻑 담금질한 24평 아파트에서 원금 상환의 그날을 위해 말 달리는 맞벌이 부부, 종합부동산세 납부를 일종의 꿈으로 간직한 부부다.

순전히 직업상 골프를 배울 수 밖에 없었던 아내와 그 아내의 연습 친구가 되어 줄 수 밖에 없었던 남편의 비극적 운명으로 우리의 골프는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비극이었든 희극이었든 간에 일단 골프의 마수에 걸려든 자들 중에 온전히 제정신 어드레스 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결국 골프를 향한 외사랑에 빠져 벙어리 냉가슴 앓듯 딱 죽지 않을 만치만 골프를 알현하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적당한 시기가 왔고, 우린 그것을 기회라 이름 지었다. 별 망설임없이 단촐한 가방을 꾸렸고, 1년 오픈된 항공 티켓 인천 <-> 런던 행 외엔 아무 것도 세팅하지 않는 현장 박치기 원칙을 고수하고 대책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자금은 5년 이상 적립해온 적금이 기반이 되었고 여기에 아내의 퇴직금이 보태졌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용기를 준 것은 우리가 가야할 그 곳이 유럽이라는 점이었다. 골프의 태생이 영국이기에 깊숙히 뿌리 내린 골프의 역사가 내뿜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땅임과 동시에 잔디의 생육 환경이 우리와는 사뭇 달라 어느 곳에서나 골프를 싸게 즐길 수 있는 대중성마저 갖춘 골프의 대륙이 아니던가. 최악의 경우 골프가 여의치 않더라도 즉시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대체재를 쉽게 발굴할 수 있는 다문화의 짜임새 있는 땅이 또한 유럽이기에 최소한 배낭여행 시절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유레일에서 선잠을 자던 그 시절의 앙갚음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트는 당연히 골프 '종주국' 영국이다. 두 세 달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골프장들을 두루 섭렵한 후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세 달 정도를 더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으로 날아가 한 두 달 정도 뉴욕에서 LA까지 Cross Country 골프를 할 예정이다.

세계 100대 코스가 집중 분포한 영국권과 미국에서는 골프장의 순위 위주로 동선을 잡겠지만 20여개국 정도를 계획하고 있는 유럽 대륙에선 골프장 순위 보다는 이동 경로 자체가 중심이 될 것이다. 불특정 골프장이 복불복으로 우리와의 인연을 맺게 될 것이다.

타이어 닿는대로 김삿갓식 경로를 지향하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을 예정한 긴 호흡의 여행길. 글과 사진으로 함께 떠나 보세요.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