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아이] 이 대통령이 홍콩을 봐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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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만일 이런 계획이 실현된다면 대통령의 일정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인을 만나 야반도주까지 해야 하는 경영의 어려움과 각종 애로사항을 듣고 위로도 할 것이다. 애로사항은 대통령을 통해 중국의 지방 관리들에게 전달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원론적인 해결책으로 화답할 것이다. 대통령은 또 중국의 경제특구를 둘러보며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중국을 좀 더 알고 싶다면,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묘책을 고민하고 있다면 홍콩을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이유는 대략 네 가지다.

첫째, 홍콩에는 중국의 미래가 있다. 중국이 홍콩을 배우고 있다는 얘기다. 매년 수백 명의 젊은 엘리트 관리들이 홍콩의 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 파견돼 연수를 하고 있는 게 대표적 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1000여 개가 넘는 홍콩 기업이 중국 기업에 경영자문을 하고 있다. 중국 대도시 지하철공사 직원들까지 홍콩 지하철인 MTR 경영기법을 배우고 있을 정도다. 중국의 경제와 행정·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는 공무원 경쟁력이다. 우선 전체 16만 공무원 대부분이 영어가 가능하다. 특히 과장급 이상 공무원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에 가깝다. 또 업무 전문성은 대학교수 뺨치고 경제 마인드와 서비스 정신도 탁월하다. 지난해 홍콩에 지사를 세운 어느 한국 중견기업 관리자 얘기다. “현지 법인을 세운다고 하자 공무원 한 명이 회사로 파견 나와 모든 것을 대행해 주더니 법인 설립 후에는 기자회견까지 주선해 홍보를 해줬습니다. 기업 하기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이 대통령이 바라는 공무원상 그대로다.

셋째는 아시아를 넘어 뉴욕·런던과 경쟁하는 금융산업이다. 세계 100대 은행 중 80여 개 은행이 홍콩에 지사를 두고 있는데 여기에는 국제금융은 물론 중국 금융전문가가 줄잡아 1000명은 넘는다. 중국 금융의 미래는 홍콩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현재 중국 개혁·개방의 시발지인 선전시가 홍콩 금융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이미 홍콩 금융관계자가 시정부 금융산업 정책 입안과 시행 과정에 참여해 선물과 채권시장 개설 등을 주도하는 단계다. 중국은 선전의 경험을 중국 전 도시로 확대할 것이 분명하다. 홍콩에서 어렵게 모셔간 윌리엄 라이백 금융감독원 특별고문을 각종 제도와 언어 소통의 문제점 등을 이유로 내쫓아내는 한국의 금융당국을 생각하면 전율이 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국제화다. 홍콩에는 70여 개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 모여 산다. 그러나 외국인을 차별하는 법과 제도, 문화는 어디에도 없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렇다. 그러니 외국인이 자유롭게 들어와 투자도 하고 관광도 한다. 왜 그럴까. 홍콩에 사는 이는 누구든 홍콩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홍콩인의 믿음 때문이다. 국제화를 위해서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의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홍콩을 모르고 앞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말을 이 대통령도 새겨들었으면 한다.

최형규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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