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前총리 정부개혁에 비판의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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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회창(李會昌)前국무총리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그의 주된 화두인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주조(主調)는 비판쪽이었다.
14일 생산성본부 주최의「신경영혁신 최고경영자 조찬회」석상에서였다. 강연주제는「개혁과 우리의 미래」였다.
그는『기업은 잘 모르니까 정부에 참여한 경험과 평소의 생각을얘기하는 것이니 가볍게 들어달라』며 운을 뗐다.
그러나 가벼운 게 아니었다.현재의 개혁에 강한 비판을 퍼부었다.대상은 개혁의 일반론에 국한되지 않았다.정치권력의 행태도 떠올렸다.반대의견을 듣지않는 권위적 태도도 날카롭게 짚었다.
그는 개혁의 필요성부터 역설했다.먼저 뇌물경제(BRIBONOMICS)라는 용어를 쓰면서『부패가 없는 국가군,부패가 조직화되어 있는 국가군,부패가 계통이 없고 무질서하게 확산된 국가군의 세가지 유형이 있다』며 우리 개혁의 현단계를 진단했다.
독재아래서 둘째의 부패구조를 가졌으나 김영삼(金泳三)정부가 이를 파괴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민주화로 나가면서 더 부패가 악화되는 수가 있다.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면 부정의 계통성이 무너져 모두가 부정을 저지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김영삼 정부가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나가지 않는다면 셋째의 부패모델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 부패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올지 모른다는 걱정이다.이어 그는『문민정부라고 하지만 아직도 정치권력의행태가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지적했다.
그는『이는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개인의 창의성을 확립하지 못한데서 오며 그래서 개혁도 지지부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행정이나 경제에서 규제완화도 아직 안되고 있다.총리로 있을 때도 실제보고와는 달리 규제완화를 피부로 못느낀다는 기업들의 불만이 많았다.행정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사고와 인식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비판과 반대의견을 수용하려는 태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개인이나 단체가 정당하게 정부정책을 비판해도 정부의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래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착이 어렵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또『정치권력이 법을 수시로 뜯어고쳐 법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정치권력이 법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하면 국민들도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예를 들어『선거부정방지법을 제정한지 얼마되지않아 대통령의 선거운동 필요성이 제기되고 선거법상 불가능하다고 알려지자 곧 법을 개정하자는 말이 나왔다』며 정치권의 준법정신 부족을 성토했다. 이같은 비판은 총리까지 지낸 그로서는 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말미에『몇가지 비판적인 시각을 얘기한다고 정부를 비방하거나 비난할 뜻은 없고 개혁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朴泳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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