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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여행>네팔무스탕왕국 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포카라에서 무스탕으로 갈 수 있는 자동차 도로는 없다.안나푸르나봉과 다올라기리봉 사이를 흐르는 칼리간다키강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 해발 2,700나 되는 히말라야 산중에 「조므솜」(「새 요새」라는뜻)이라는 조그만 마을까지 경비행기 를 타고 갈수 있을 뿐이다.그렇지 않으면 도보로 9일동안 걸어서 가야한다. 카트만두를 떠나 포카라에 온 후 우리는 매일 오전5시에 일어나 비행장으로 나가 조므솜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일과였다.그러나 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겨진 은둔의 땅 무스탕은 우리의접근을 그리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몬순기에 접어들 어 기상이 나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기다린지 닷새째 되는 날 포카라를 이륙한 15인승 독일제 도미엘행 비행기는 세계에서 제일 깊다는 칼리간다키 계곡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북쪽으로 기수를 돌린 비행기는 온통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의산봉우리 사이를 요리 조리 곡예하듯 빠져나갔다.
오른쪽 창으로는 히웅추리(6,441).안나푸르나남봉(7,219).1봉(8,091).3봉(7,555).마차프차레(6,993).닐기리(7,061)가,왼쪽으로는 투쿠체(6,920).다올라기리(8,167)등의 웅장한 자태가 눈앞에 다가왔 다가는 멀리사라져갔다.
한편 산 정상으로부터 눈 녹은 물이 수백나 되는 직벽을 타고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장관이었다.
산봉우리들이 7천를 넘는 곳에서 비행고도는 3천를 유지했으니산악비행치고는 이곳만큼 스릴 넘치는 곳도 없으리라.40분간의 곡예비행 끝에 자갈이 깔린 활주로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조므솜에 착륙했다.
강원도 산골의 한 조그마한 기차역같은 초라한 비행장 건물을 빠져나오니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술집 모양을 한 롯지(여관)앞에 마부들이 말들을 묶어놓고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곳으로부터 가로누워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북쪽 티베트고원까지가 무스탕 왕국이다.
무스탕을 여행하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폐허가 된 옛 요새들을 많이 볼 수 있다.그만큼 이곳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외부 침략에 저항했던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리라.
60년대 초 중국군이 티베트를 강점하자 네팔 국토인 이곳으로쫓겨온 티베트 게릴라(캄피스)들은 10여년동안 중국군에 저항해치열한 독립투쟁을 벌였다.
중국은 네팔정부에 압력을 가해무스탕 안의 게릴라들을 국경 밖으로 쫓아낼 것을 강력히 종용했다.
이에 따라 네팔군이 항복을 받기 위해 게릴라 대장인 왕디 대령에게 갔을 때 이들은 한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달라이라마의 티베트 임시정부 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가기 위해 한밤중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는 필사적인 탈주를 시도한 것이다.그러나 결국 인도 국경까지 거의 다 가서 네팔군 헬리콥터의 공격을 받아 왕디 대령과 그 부하들은 전멸했다.이로써 무스탕에서 티베트저 항세력은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
즈므솜에서 무스탕의 수도 로만탕까지는 조랑말이나 당나귀 한 마리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아주 좁은 오솔길로 이어지는데 이 길은 로만탕에서 티베트 국경으로 계속된다.
그러나 이 작은 오솔길은 고대로부터 수많은 힌두교.불교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오갔던 곳이며 중국과 인도를 이어주는 히말라야 산중의 유일한 교역로였다.
조므솜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이제부터 로만탕까지 4천5백를 오르내리는 긴 여정준비를 위해 짐을 꾸렸다.우리 일행 다섯명이타고 갈 말 다섯 필과 식량.천막.연료등을 싣고 갈 나귀 여덟필을 구했다.또 요리사.포터 등도 모집했다.드디 어 우리의 캐러밴은 칼리간다키강의 동쪽 산능선을 따라 말방울 소리를 요란스레 울리며 북쪽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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